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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처칠의 시가를 빼앗은 거장

등록 2009-02-24 18:19수정 2009-02-24 19:52

윈스턴 처칠, 1941
윈스턴 처칠, 1941
‘인물사진 거장, 카쉬’전
20세기 ‘비범한 인물들’ 촬영
보통사람과 다른 열정에 주목
유서프 카쉬(1908~2002).

우리한테 낯설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아하! 이 사진을 찍은 양반이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장 널리 회자되는 사진은 사진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윈스턴 처칠.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작품으로, 냉철하게 전쟁을 이끈 처칠의 진면모를 잘 잡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데 성공하고 한참 기다렸다.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며 입에서 시가를 뺏어냈다. 처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억센 표정을 지었고, 바로 그때 셔터를 눌렀다. 잠깐의 적막. 그는 웃으며 ‘한 장 더 찍으시게’라고 했다. 촬영 뒤 처칠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당신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도 가만히 사진 찍게 할 수 있군요’라고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57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57
카쉬가 기록으로 남긴 처칠 사진에 얽힌 일화다.

오드리 헵번, 헬렌 켈러,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조지 버나드 쇼, 파블로 카살스, 재클린 케네디, 어니스트 헤밍웨이, 피델 카스트로, 소피아 로렌, 테레사 수녀, 알렉산더 칼더, 앤디 워홀, 언셀 애덤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월트 디즈니, 클라크 게이블,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무하마드 알리, 카를 융, 알렉산더 플레밍,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가 카메라 앞에 세운 명사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카쉬가 위대한 인물에 주목한 것은 그들한테는 범인과 다른 열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 그는 그들의 무의식적인 제스처, 추켜세운 눈썹, 놀란 반응, 잠깐 동안의 정지 등에 감춰진 내면의 힘을 포착해 냈다. 평상시에 보여주는 마스크가 들춰지는 순간 셔터를 맞췄다.

파블로 피카소 1954
파블로 피카소 1954
그는 고향에서 추방된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이다. 캐나다 퀘벡 셔브룩에 먼저 정착해 초상사진사로 일하던 삼촌 조지 나카쉬가 이 14살 소년을 불러들였다. 애초 법률가를 꿈꿨던 카쉬는 사진관 조수일에 심드렁했다. 하지만 배움도 배경도 없는 이민자가 단기간에 일어서기에는 사진가가 제격임을 알고 삼촌이 가진 사진에 관한 지식을 모두 흡수했다. 더 배울 게 없었던 그는 보스턴의 사진가 존 가로의 조수가 되었고 이때 사진술보다 더 중요한 피사체를 보는 법과 기록의 습관을 배웠다.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눈앞에 있을 때 기록으로 남겨 놓아라.”

가로의 가르침에 따라 카쉬는 인물을 찍을 때마다 기록을 남김으로써 인물과 시대적 배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역사물을 만들 수 있었다.

카쉬의 작품은 조명을 쓴 게 특징. 렘브란트와 한스 홀바인 등의 작품 연구를 통해 인물사진에서 빛의 중요성을 터득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공 조명을 사용해 원하는 분위기를 마음대로 빚어냈다. 당시만 해도 스튜디오에 인물을 앉혀 놓고 빛이 알맞게 비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기가 일쑤었다. 그는 캐나다 오타와의 소극장 축제에 초청돼 연극인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무대 조명의 이점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때 첫 아내인 배우 솔랑즈 고티에를 만났으며 축제 위원장인 베스보로 총독과도 인연을 맺었다.

소피아 로렌 1981
소피아 로렌 1981
“총독 부부를 스튜디오로 두 번이나 부른 끝에 찍은 사진이 히트하면서 ‘궁정 사진가’가 되었고, 이는 41년 오타와를 방문한 처칠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연결됐다.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무수한 영웅들을 만나 이들의 내면세계를 기록하게 됐다. 자신의 열정과, 자질 그리고 때가 잘 만나 어우러진 것.

3월4일부터 5월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70여 점을 소개하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은 3부로 구성된다. 1부 초상사진에서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카쉬가 만난 정치가, 예술가, 배우, 과학자들의 사진이 전시된다. 2부 ‘사회의 얼굴’에서는 그가 포토저널리즘 정신으로 찍은 1950년대 캐나다의 사회상을 볼 수 있다. 3부는 카쉬의 초기 작업들.

이와 함께 국내 작가 임응식, 육명심, 박상훈, 임영균, 김동욱씨의 작품 모음인 ‘한국 인물사진 5인전’도 열린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b>오드리 헵번, 1956</b> 영원한 소녀로 남은 배우 오드리 헵번. 카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6년 할리우드에서였다. 헵번을 촬영할 때 카쉬가 “당신 내면에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이 보인다”고 지적하자, 헵번은 2차 대전 때 자신의 비참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의 내면을 담은 카쉬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자, 한 유명인은 헵번만큼 자기도 아름답게 나와야 촬영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 1956 영원한 소녀로 남은 배우 오드리 헵번. 카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6년 할리우드에서였다. 헵번을 촬영할 때 카쉬가 “당신 내면에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이 보인다”고 지적하자, 헵번은 2차 대전 때 자신의 비참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의 내면을 담은 카쉬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자, 한 유명인은 헵번만큼 자기도 아름답게 나와야 촬영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b>파블로 카살스, 1954 </b> 거장 파블로 카살스는 다른 사진과 달리 텅 빈 방에 첼로를 안은 뒷모습만 보인다. 조국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예술가의 쓸쓸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촬영 몇 년 뒤, 사진이 보스턴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한 노신사가 날마다 그의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큐레이터가 물었다. “왜 항상 이 사진 앞에 서 계시는 건가요?” 그는 나무라듯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하시게. 지금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는가!”
파블로 카살스, 1954 거장 파블로 카살스는 다른 사진과 달리 텅 빈 방에 첼로를 안은 뒷모습만 보인다. 조국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예술가의 쓸쓸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촬영 몇 년 뒤, 사진이 보스턴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한 노신사가 날마다 그의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큐레이터가 물었다. “왜 항상 이 사진 앞에 서 계시는 건가요?” 그는 나무라듯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하시게. 지금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는가!”
<b>어니스트 헤밍웨이, 1957 </b> 소설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살 4년 전인 1957년 카쉬를 만났다. 촬영 전날 저녁, 카쉬는 헤밍웨이를 사전 조사할 겸 그가 즐겨 마시던 럼 칵테일 ‘다이키리’를 맛보기 위해 헤밍웨이가 즐겨 찾는다는 ‘라 플로리디타’ 바를 답사했다. 다음날 오전 9시, 그곳에서 만난 헤밍웨이가 물었다. “무슨 음료를 마시겠는가?” 카쉬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다이키리”라고 했다. 그러자 헤밍웨이 왈, “아니 카쉬!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그걸 마시겠다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7 소설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살 4년 전인 1957년 카쉬를 만났다. 촬영 전날 저녁, 카쉬는 헤밍웨이를 사전 조사할 겸 그가 즐겨 마시던 럼 칵테일 ‘다이키리’를 맛보기 위해 헤밍웨이가 즐겨 찾는다는 ‘라 플로리디타’ 바를 답사했다. 다음날 오전 9시, 그곳에서 만난 헤밍웨이가 물었다. “무슨 음료를 마시겠는가?” 카쉬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다이키리”라고 했다. 그러자 헤밍웨이 왈, “아니 카쉬!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그걸 마시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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