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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한효석 개인전 ‘시대정신-검증되지 않은 권위에 대한 도전’

등록 2009-02-27 18:30

한효석
한효석
“위나라 사람인 섭정은 어릴 적부터 칼쓰기를 좋아했다. 열 살 무렵 나그네 검객이 한 칼로써 인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보고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쾌속검의 달인 표공의 제자가 되어 10년이상 수련한 결과 칼을 휘두르면 검광이 일으키는 막에 싸여 몸이 보이지 않았다. 섭정은 작은 사건에 휘말려 제나라 수도 임치에 숨어들어 백정 일을 하며 살았다. 어느 날 엄수가 찾아와 자기의 원수인 한나라 재상 협누를 죽여달라고 청했다. 섭정은 노모 봉양을 이유로 거절했다. 엄수는 섭정과 그 가족을 5년동안 보살폈다. 노모가 죽어 엄수 덕분으로 장례와 삼년상까지 마치고 엄수를 찾아갔다. 엄수에게 그동안의 배려를 사례하고 협누의 청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섭정은 심부름꾼으로 가장하고 협누를 찾아가 30여인의 호위병들과 20여 명의 궁수를 물리치고 당상 위의 협누를 살해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져 엄수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알까지 뽑아낸 뒤 목을 찔러 자결했다.”

아트사이드에서 여는 한효석 개인전 ‘시대정신-검증되지 않은 권위에 대한 도전’(2월25일~3월9일)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자객 이야기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다.

섭정의 행동은 신분을 숨기기 위한 것이지만 얼굴 가죽을 벗기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인식은 2300년의 세월이 떨어진 종로 한복판에서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스스로 얼굴을 벗기는 것이나 가죽을 벗긴 얼굴상을 전시하는 것이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2004년 이래 작가가 이런 작업을 반복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평택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그곳에서 볼 것 못 볼 것을 다 봤다. 미군기지가 있어 한국의 젊은 처녀들이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았던 것. 그뿐이겠는가. 여성들이 몸을 팔았다면 남자들은 뒤치닥거리 허드레를 하며 품을 팔아야 하는 것. 누구는 남의 땅에 번쩍번쩍 군복을 입고 진주하고, 누구는 그들을 위해 몸과 품을 팔아야 하는가. 한꺼풀 벗기고 보면 똑같은 사람인데, 국적과 신분, 즉 권력의 힘에 따라 전혀 다른 운명을 갖는 것이 합당한가.

평택은 동두천 등지의 미군의 이동배치 계획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과 농토를 기지로 내놔야 했다. 작가가 살아온 집과 땅 역시 그것에 포함돼 수용되었고 아직 보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싸우다 밀려난 대추리 주민들의 원성에 작가의 목소리도 포함되지 않았겠는가. 작가의 얼굴은 무척 앳되어 그 어디에도 고향과 나라의 이러한 사정을 작품화하겠다는 강단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작품은 도살된 돼지몸에 서양인의 얼굴을 단 반인반수 조각. 박박머리인 것이 미군병사의 그것처럼 보인다. 미군이라고 다를까. 미국이란 나라는 병력이 모자라자 미국 체류자들한테 시민권을 준다는 미끼를 던졌고, 병력의 상당수는 이런 미끼를 문 약자들인 것. 반인반수는 국가 또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누구라 따질 것이 없이 희생되는 개인을 상징한다.

작가의 설명을 들어보면, 작품은 인물사진과 저민 쇠고기의 합성사진이 바탕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 사진을 바탕으로 극사실적으로 그려 혐오스럽게 보인다. 도록을 처음 본, 어떤 이의 첫 반응은 “아, 징그러워. 이 작가 도대체 뭐야?” 작품은 징글징글하게 사실적이어서 작가가 뜻하는 바를 즉각 떠올리지 못할 정도다.

어디 징그러운 것이 그것뿐인가.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살육이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탄소를 쏟아내는 미국 대기업의 환경파괴가 부른 재앙도 있다. 가까이는 철거민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서 빚어진 용산참사도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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