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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등록 2009-03-03 18:28수정 2009-03-04 19:48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비정규직 등 한국 상황 추가
원작의 결 한땀한땀 잘 살려
번역극, 특히 국내에서 초연되는 현대물일수록 성공의 가능성은 낮다. 고전이야 충분히 연구되어 작품의 실체를 가늠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길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다 허방을 짚기 일쑤다. 여기에 문화적 차이까지 가세하면 바로 코앞의 무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도 하듯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햄릿이라면 사느냐 죽느냐의 양자택일로 번민하겠지만, 연출가들은 원작이냐 관객이냐를 놓고 씨름한다. 어색하고 불편하더라도 원작을 준수할 것인가, 원작이 훼손되더라도 한국적으로 번안해 동시대 관객과 만날 것인가.

신예 김주연이 연출한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후자를 선택했다. 원작은 독일 전후세대 작가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의 <오버외스터라이히>. 다행히 원작의 결도 잘 살려낸 작업이라, 번안 공연의 작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2인극인 이 작품은 배달직과 판매직 일을 하는 도시 노동자 부부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욕망을 기꺼이 소비한다. 티브이를 시청하다 연예인들의 삶을 욕망하고 잡지를 뒤적이며 인테리어를 바꿀지 궁리하며, 친구가 산 새 자동차에 군침을 흘리거나 외식을 하면서 옆 테이블의 비싼 음식을 곁눈질하는 식이다. 그러나 아내의 임신을 계기로 평범해 보이던 이 모든 사소한 일상은 일시에 위협받는다. 달콤한 소비의 욕망이 뱀파이어처럼 그들을 빨아먹어, 아이를 낳고 키울 안전한 재력이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 크뢰츠의 장점은 큰 목소리로 설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작가는 젊은 시절 직접 경험하고 관찰했던 도시 노동자의 일상과 불안을 구체적으로 그려내 공감을 자아냈고, 짧은 에피소드를 속도감 있게 나열하면서 관객들이 스스로 판단하게끔 유도했다.

제작진은 독일 근처의 오버외스터라이히를 ‘경남 창녕군 길곡면’으로 번안하면서 제목만이 아니라 원작의 모든 상황을 한 땀씩 바느질하듯 촘촘히 번안했고, 여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한국적 상황을 추가하면서 주제 의식을 심화하였다. 또 부부의 집을 에워싼 커튼을 열고 닫는 방식만으로 스무 개에 달하는 에피소드를 소화해낸 미학적 공간 운용력,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사투리와 연기는 흡인력이 있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정서의 핵심까지 가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정교함이나 아기자기한 생기는 넘치지만, 그에 밀려서 존재의 근원적 혼란과 직면한 주인공들의 절망과 폭발은 미온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좋은 출발이니, 한 걸음 더 분발하기 바란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 평론가 김명화씨의 연극 리뷰를 이번 회로 마칩니다.

■ 3월 5일 바로잡습니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리뷰 <경남 창녕군 길곡면>의 연출가는 김주연씨가 아니라 류주연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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