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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종이에 오려넣은 식민·이주·전쟁

등록 2009-03-06 18:43

딜런 그래함(38)
딜런 그래함(38)
네덜란드 이주민 작가 그래함 첫 방한 개인전
“이주민 신분으로서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낀 존재에 관한 사유를 담았다.”

한국 첫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네덜란드 작가 딜런 그래함(38·사진)은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지 크기의 아트지를 칼로 오려내면서 식민, 이주, 전쟁 등의 내용을 박아넣은 작품들이다. 언뜻 동화적 내용일 법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두대와 잘린 목, 총과 칼, 전투기와 버섯구름 등이 들어 있다. 정서적 형식과 어처구니없는 역사가 충돌하는 아이러니다.

그는 뉴질랜드 태생으로 고교 때까지 원주민 마오리족과 같은 교실에서 배웠다. 19살 때 네덜란드 여성과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네덜란드로 갔다. 증조부의 고국인 그곳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고 인류의 역사와 문화로 관심사를 넓혀가며 작품을 해왔다. 그가 주목한 것은 유대인 사진작가 예프게니 칼데이(1917~97).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베를린에 진주하는 러시아 병사한테 깃발을 주어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든 뒤 찍은 다큐 사진이 유명하다. ‘기록과 연출의 결합’으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점에서 두 작가는 빼닮았다.

무거운 주제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채택한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종이. 종이의 가벼운 느낌에다 오려내기 기법을 쓰면서 작품은 동화적인 쾌활함을 얻었다. 멕시코 전통 종이 공예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보통 종이 공예는 여러 겹 접고 오려내어 반복되는 문양을 만들어내지만, 그의 작품은 전지를 펼쳐놓고 이미지를 오려내는 탓에 반복은 없다.

하지만 오려내기 자체는 반복. 작품에서 보이는 장식적 무늬와 함께 공예적 요소에 속한다. 그럼 창의성은 어디서 구현한다는 말인가. “반복이 곧 창의성이다. 무수하게 반복하면 수도승처럼 몰입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 창의성이 스며든다. 삶은 반복이고 삶이 예술 아닌가.”

우문에 현답이다. 작가는 “이민자가 최소한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2배 이상 노력해야 했다”면서 손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삶과 혼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전시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엠에서 다음달 18일까지 한다. (02)544-8145.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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