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2009
강홍구 사진전 ‘사라지다’
은평뉴타운 개발지구 기록
개발 부조리·인간탐욕 증언
은평뉴타운 개발지구 기록
개발 부조리·인간탐욕 증언
잡음처럼 솟은 전신주들. 그 사이로 널따란 포장도로가 산쪽으로 달려가 소실점으로 사라진다. 길 옆에 외로이 선 향나무, 살구나무. 버려진 개 두 마리가 길을 횡단하고 한 남자가 자전거를 끌고 소실점에서 걸어나온다.
서울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에서 13일부터 5월3일까지 열리는 강홍구씨의 개인전 ‘사라지다’에 걸려 있는 사진 작품 <철거>의 풍경이다. ‘사라지다’는 작가가 2002년부터 최근까지 서울 은평 뉴타운 개발지구의 풍경들을 기록한 사진전.
<철거>가 유독 시선을 끄는 건 뉴타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국가의 폭력을 미학적으로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은 땅 위의 사적인 각종 구조물들이 모두 제거되고 공적인 구조물만 덩그러니 남은 모습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들어온 국가의 모습이 포장도로와 전기·통신로의 형태로 폭로되어 있다.
철거 이전의 모습은 이제 상상으로 존재한다. 이전에는 길의 끝과 옆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뤄 교환과 생산을 준비하면서 살았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닭과 개를 기르고 철 따라 꽃과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철거>는 군데군데 파여 물이 고인 누더기 도로를 통해 변두리 주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암시한다. 또 그 자리를 차고앉을 외지인용 고층아파트를 암시하면서 개발의 부조리와 인간의 탐욕을 증언한다.
회화과 출신의 작가는 애초 영화, 광고 등의 기존 이미지를 합성한 몽타주 사진으로 현대인의 고민과 절망을 삐딱하게 표현했다. 1984년 상경한 이래 변두리를 전전해 온 작가는 서울 근교의 버려진 드라마 촬영 세트장에서 실제와 허구의 뒤섞임을, 폐허가 된 김포공항 근처 오쇠리 철거지역에서 삶의 양지와 그늘을 목격하면서 현실에서 이미지를 발견해 왔다.
이번 작업은 조금 다르다. 철거 지역의 한 곳에 예쁜 장난감 집을 놓거나, 위태로운 산동네에 사이버 전사 인형을 놓으며 현실과 상상을 뭉뚱그렸던 작가의 개입을 끊었다. <세한도>, <고사관수도> 등 옛 그림을 소재로 한 패러디도 자제했다. 현실 자체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비석거리 청색 대문집. 빨간 장미가 있는 닫힌 문 너머로 전깃줄이 들어가고 담벼락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나의 집을 사랑합니다’라는 궁체 글씨가 쓰여 있다.
“세상에! ‘내 집을 사랑한다’는 말이 투쟁 구호가 되는 세상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습니까?” 작품을 보며 작가가 하는 말이다. (02)736-1447.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유리병> 2009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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