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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붓을 내던진 화가들 - 갤러리현대 ‘손길의 흔적’

등록 2009-03-11 14:49수정 2009-03-12 15:31

심수구
심수구
“그들은 붓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작가가 되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냐고? 그들은 붓을 쓰지 않는다. 당연히 안료도 안 쓴다. 그럼? 안료가 아니라면 어떤 것이라도 무방하다. 갤러리현대에서 여는 ‘손길의 흔적’ 전(4월5일까지)에는 붓을 놓은 작가들 17명을 모았다. 그들이 쓰는 것은 일종의 ‘대안안료’. 곱게 먹기는 수천 년 진화해온 안료, 즉 용제에 녹인 미세분말을 따를 게 없으니, 그들의 ‘대용안료’는 별 수 없이 굵고 거친 입자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레고(황인기), 못(유봉상, 이재효), 쌀알(이동재), 돌조각(정광식), 매듭(신성희), 스티로폼(전광영), 나뭇가지(심수구), 자개(김유선), 단추(노상균), 스테플러철침(김정주) 등 희한한 것들이다. 문자(유승호), 망점(윤종석), 구멍(이길우) 또는 구리선(존배), 상표(김지민), 뜯어내기(이지현)도 있다.

그것은 곧 물감그림을 수천, 수만 배 크게 확대해서 본 것과 흡사하다. 작은 물감입자는 거칠고 굵게, 즉 망점 또는 덩어리 형태로 드러난다. 결과는 당연히 멀리서는 회화요, 가까이서는 부조가 된다. 갤러리 쪽에서는 꼼꼼함과 반복에 무게를 두었지만 그것은 ‘대용안료’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정상적인 안료의 곱게 먹음을 손으로 대신하려니 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은 왜 그런 짓(?)을 할까? 콘텐츠가 아닌 소재에서 상식을 깸으로써 반은 먹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관객은 “어? 이런 것으로 회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이거 회화야? 부조야?” 하고 반문하게 함으로써 콘텐츠에의 몰입을 차단한다. 궁극에는 “왜 이런 짓을 할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바로 그게 노림수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현재의 형태로 진화하기 이전의 회화, 회화라는 이름이 제한해온 ‘그 무엇’을 생각하게 한다.

예컨대 황인기는 엉뚱한 어린이처럼 조립용 장난감인 레고에서 색을 취했다. 그가 선택한 색은 한국화의 산수화를 보여주지만 함께 따라온 단위 사각형과 오돌토돌 질감은 디지털 효과를 내면서 전통과 충돌한다. 유쾌한 파열음. 못을 박아 대가리를 반짝반짝하게 갈아낸 유봉상의 산수화 역시 비슷하다. 윤종석, 정광식, 이길우, 이동재, 유승호는 망점, 돌, 구멍, 쌀, 낙서글씨 등으로 소재를 조금씩 달리할 뿐이다. 소재에서 자기만의 것을 가졌다면 일단은 화단에서 발판을 굳혔다고 봐도 좋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황인기, 유승호, 유봉상 등은 한국그림, 윤종석, 정광식은 서양그림처럼 보인다. 신성희, 전광영, 심수구는 추상, 김유선, 노상균은 옵아트, 이지현, 존배, 김지민은 설치·조각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무망하다. 작가-대안안료 짝짓기의 이면에 주목해야 한다. 개개의 작가들이 택한 대용안료에는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단지 남들이 쓰지 않았다는 이유라면 실격이다. 예를 들어 전광영. 한약방 집안에서 자란 그는 봉지에 싸인 한약의 아련한 냄새를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한약을 포장하듯 스티로폼을 옛 책으로 싸고 이를 조립한 것. 한국의 유구한 전통과 달표면의 자국을 연상시키는 추상성의 접점을 작품화 했다. 동양과 서양, 찰나와 영원이 다르지 않아 지향해야 할 바가 양자의 통합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작품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 좀 긴 편이다. 기법의 경계가 뚜렷이 보이면서 작의를 더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지현
이지현

김유선
김유선

김정주
김정주

김지민
김지민

노상균
노상균

신성희
신성희

이재효
이재효

유봉상
유봉상

유승호
유승호

≫ 윤종석

≫ 이길우

≫ 이동재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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