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상설전)
백남준 아트센터 ‘슈퍼하이웨이 첫 휴게소’
‘플럭서스 정신’ 동료·후배 작품들
제도·관습에 대한 전방위적 조롱
‘플럭서스 정신’ 동료·후배 작품들
제도·관습에 대한 전방위적 조롱
경기도 용인시의 백남준 아트센터가 고속도로 휴게소로 업종을 바꿨다. 그렇다고 우동을 팔거나 엔진 오일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개관전 ‘나우 점프’로 손님치레 몸살을 앓은 아트센터의 두 번째 전시. 이름하여 ‘슈퍼하이웨이 첫 휴게소’다. 함께 숨을 고르며 길게 뻗은 ‘백남준 하이웨이’에 오를 채비를 하자는 권유다. 외국인 학예 연구실장 토비아스 베르거의 첫 기획전. 입구부터 거대한 오렌지색 콘이 도열해 있다. 주차 안내용 콘을 수백 배 키운 것으로 작가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이다. 얼핏 보아 손님맞이 같지만 아트센터가 잠시 주차한 대형 트레일러임을 상징한다.
라 몬테 영의 <밥 모리스를 위한 작곡 #15>는 악보가 작품이다. ‘시와 반음 올린 파를 동시에 계속해서 치시오’란 내용이 악보의 전부다. 백남준은 여기에 맞춰 넥타이를 붓 삼아 엉금엉금 뒷걸음으로 선을 긋다가 마침내 머리를 물감통에 담가 ‘머리붓’을 삼는다. 미니멀 곡의 원시적인 해석. 다음으로 <아바나에서 고용한 여섯 사람한테 새긴 8피트 직선 문신>(산티아고 시에라). 미국의 금수 조처로 가난해진 쿠바에서 한 사람에 5달러씩 노동자 6명이 등을 내주어 일자 문신을 새기는 모습을 기록한 비디오다. 문신, 세계화, 제3세계 등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전시는 백남준 및 동시대 플럭서스인들의 작품과 그 정신을 계승한 젊은이들 작품을 교직한 것이 특징이다. 플럭서스 정신은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제도와 관습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과 조롱이 핵심이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뭔놈의 것이 그리 복잡해? 그거 다 즈그들끼리 해 처먹으려는 수작들이지.”
<피아르(PR) 중국 베이징 올림픽>은 2008년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젊은이 셋(김홍석, 천사오슝, 오자와 쓰요시)이 중국 베이징에서 연 이색 올림픽을 담았다. 성화 봉송은 담뱃불 옮기기, 메달은 노랑·파랑·빨강 파프리카다. 사격은 방울 토마토, 투포환은 날달걀, 권투는 안마, 펜싱은 간질이기, 마라톤은 안대 하고 오래 자기다. “스포츠? 세금으로 사육한 선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참여해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신의 손>(시노다 다로)은 거대한 프로펠러다. 한쪽 끝에 첨단 제트엔진이 달렸고 또다른 쪽에는 엘이디 붉은 세로선이 달렸다. 복잡한 기계 장치가 빙빙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것은 고작 금지를 상징하는 빨간 선이다. ‘장영혜중공업+타쿠지 코고’의 외국인용 비무장지대 관광지를 찍은 비디오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특별한 때에 왔다 간 실향민들의 망향사가 금단의 철조망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특정한 곳 외에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곳. 붙박이 화면에 사람들이 흔들리고 화면 가득 고딕체로 쓴 금지사항이 되풀이된다. “금기? 분단? 그거 누구 좋으라는 거야? 피해는 오로지 체제와 무관한 민초들 몫이라고.” 전시장에서 머물수록 ‘백남준, 백남준 하는데 좀 지겹지 않아?’ 하던 생각이 ‘백남준은 파면 팔수록 자꾸 새롭게 드러나는 광맥이군’ 하는 생각으로 바뀐다.
통로 바닥의 회색 페인트 얼룩. 스프레이통까지 놓인 품이 누군가 어지레질을 하고 금방 자리를 뜬 듯하다. <일반 스프레이 캔으로 바닥에 그린 2분짜리 스프레이 페인팅>. 로런스 바이너의 미니멀 조각이자 회화이자 퍼포먼스다. 엉금엉금 껌 딱지 조각을 만드는 함진씨. 콩나물 대가리, 버섯 야채, 옆구리 터진 김밥 등 싱크대 찌꺼기와 코털, 머리카락, 먼지 등 진공청소기 찌꺼기로 작품을 만들었다. “조각? 회화? 그거 폼을 잡고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만드는 ‘과정’이라고.”
팩 슈엥추엔의 <필름 2008>. 35㎜ 필름에서 컷과 컷 사이 검은 띠만 잘라 이어붙인 누더기 필름을 돌린다. 영사기는 덜덜덜 돌아가고 화면에는 검은 가로 띠가 덜덜거린다. “전시장의 사각형 프레임 틀 속에 든 것만 보았다면 당신은 바보! 그것은 만든 사람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고.”
잠시 쉬려고 들렀다면 큰 실수다. 돈과 권력이 관용화한 시간대에서 무심코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휴게소가 아니라 고해소다. 5월16일까지. (031)201-8546.
용인/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백남준 아트센터 제공
라 몬테 영 <밥 모리스를 위한 작곡 #15>
데니스 오펜하임 <콘>
산티아고 시에라 <아바나에서 고용한 여섯 사람한테 새긴 8피트 직선 문신>
용인/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백남준 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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