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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도시의 새벽,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록 2009-04-07 21:22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을 그린 <새벽>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을 그린 <새벽>
서양화가 김성호전
김성호(47) 작가의 그림은 술을 권한다. 신파로 얘기하자면 그의 눈길은 길 위에 머물고 길 위의 모든 것은 나그네들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길 위에 선 나그네다. 그는 7년 전까지 대구에서 머물며 봉산동, 구룡포, 자갈치, 황지의 새벽바람을 쐬고 댓바람에 파리, 베네치아, 프라하의 밤길을 돌아다녔다. 그랬던 김씨가 서울 언저리인 송파로 올라와 역시 서울의 새벽 거리를 누비고 있다. 강남, 이태원, 여의도 63빌딩, 심지어 남한산성까지.

나그네의 눈에 비친 도시의 새벽은 쓸쓸함이다. 유에프오 유도등처럼 점선으로 교차하는 아슴푸레한 불빛. 사무실 백색등이 꺼지고 네온 간판만 반짝이는 새벽도시. 노래방에서 2차를 끝낸 이들을 손짓하는 포장마차의 백열등. 또 한 잔 걸치고 나서면 허옇게 빈 청색 버스가 저만치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다.

“술? 원 없이 마셨어요.” 그럼 그렇지. 맨 정신에 저렇게 청승맞은 그림을 어찌 그리겠는가. ‘쨍강’ 적포도주, ‘치익’ 캔맥주, ‘싸~’ 목 넘기는 소주. 작품마다 김씨가 마신 주종이 어렴풋이 보인다. 전에는 빛을 그려나갔다면 요즘은 빛을 남기는 방식으로 그린다. 미리 파악한 불빛의 분포에 따라 노랑, 빨강, 파랑, 초록으로 밑칠을 하고 불빛을 가리거나 반사하는 입방체 건물들을 검정, 퍼렁으로 지워나간다.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은 덧칠한 검정을 긁어내어 되살린다는 설명이다.

기억은 빛으로 저장되는 걸까. 무수한 켜짐과 꺼짐, 즉 0과 1로 구성된 그의 그림은 그때 거기의 풍경과 사연을 환기한다. 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 노랑 나트륨 등이 열지은 포장 도로, 새벽녘 담배를 사러 나갔던 편의점, 누군가를 기다리던 백열등 켜진 골목길. 빛에 매료된 그는 영락없는 인상파다. 1800년대 말 파리지앵이 살아와 서울을 찾았다면 김씨처럼 새벽 풍경을 그리지 않을까. 그리고 빈속에 소주 한잔을 털어넣지 않겠는가. 그의 개인전은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02)734-0458.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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