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줄리언 오피.
한국서 첫 개인전 여는 줄리언 오피
“나의 그림은 사실주의다.”
한국에서 첫 공식 개인전을 열기 위해 방한한 영국 출신 팝아트 작가 줄리언 오피(51)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픽토그램’처럼 동그라미와 선만으로 인체를 그리고 경쾌한 색을 입힌 그림으로 유명한 그가 자신을 팝아트 작가라고 표현한 국내 신문 기사를 두고 던진 말이다.
접근 가능한 기존 언어로 작업
LCD 이용한 움직이는 그림 등
“내 작품, 팝아트 아닌 사실주의” “1950~60년대 영국에서 출발한 ‘팝아트’는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당대의 광고를 비교하면서 고급-저급 문화 논쟁이 일어난 가운데 붙여진 이름이다. 팝아트 아닌 것을 보기 어려운 지금에도 옛날 기준으로 팝아트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는 얼굴 옆모습을 특징적으로 잡아내 그린 작품 <잭>을 가리키며 “그림은 팝적이지만 액자는 뮤지엄에 걸린 것과 같지 않으냐”며 “이제 이분법은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의 그림이 사실적이라니….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우리는 이미지로써 대상을 기억한다. 무엇을 보고 어떤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느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은 미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그가 걸친 모자, 안경, 유니폼 등 상징으로 기억한다. 나의 그림은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현대 발레리나인 카테리나의 다양한 동작에다 드레스, 청바지, 데님스커트, 검은 바지 등을 입힌 작품들을 둘러보면,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잘게 분석된 한 인물을 소개받는 느낌이다. “나는 없는 것을 창조하기보다 접근 가능한 기존의 언어로 작업한다. 동그라미로 얼굴을 표현하고 개별적인 동작·패션을 사인처럼 조합한 것은 그런 결과다. 나의 그림은 보편성과 개별성이 혼합된 중간 형태다.”
평면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입체, 발광 다이오드를 거쳐 액정표시 장치(LCD)를 이용한 움직이는 그림, ‘렌티큘러’로 확대된다. 그는 엘시디 작품 하나를 지목했다. “스위스의 컬렉터 루스가 워킹머신에서 걷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40~50장면을 잡아낸 뒤 무릎 관절 등의 꺾이는 부분을 20~30개의 점으로 찍어 선으로 연결한 그림을 1초에 25컷을 보여주면서 움직이는 효과를 냈다.”
예전에는 회화적 언어, 즉 색깔을 지정해 고정된 그림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기술이 발달했고 자신은 그것을 회화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사실주의는 그런 것인 셈이다.
그는 18세기 말~19세기 초 일본의 판화가 우타마로의 작품, 17~18세기 유럽의 직업 초상화가의 작품에서 인물의 포즈나 구도, 그리고 미술적 시스템을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림 속 인물이 왼손을 배에 얹고 있다거나 늘어뜨린 커튼을 배경으로 하지만, <해리 포터>의 등장인물처럼 눈길이 관객을 좇는 것이나, 옛날 화가를 지원하는 후원자처럼 지금의 컬렉터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런 예다. 과거와 현재의 문화 언어를 접목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일본 만화로 옮겨가 있다. 일방적인 회화와 달리 스토리가 있으며 컷마다 이야기의 진행상황이 담겨있어 흥미롭다는 것. 일본의 판화상 겐과 그의 아내, 팝스타 야요이, 발레리나인 카테리나를 모델로 한 작품은 어떤 행동으로 옮겨가기 직전의 모양을 잡아낸 만화의 한 장면과 비슷하다.
“작가는 체계나 철학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흥미로운 것을 취해 요리하는 사람이다. 나는 ‘떠다닌다’(드리프팅)는 단어를 좋아한다.”
5월 말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 갤러리에서 여는 그의 개인전에서는 이런 작품의 변화를 일별할 수 있는 출품작 30여점을 선보인다. (02)735-8449.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LCD 이용한 움직이는 그림 등
“내 작품, 팝아트 아닌 사실주의” “1950~60년대 영국에서 출발한 ‘팝아트’는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당대의 광고를 비교하면서 고급-저급 문화 논쟁이 일어난 가운데 붙여진 이름이다. 팝아트 아닌 것을 보기 어려운 지금에도 옛날 기준으로 팝아트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는 얼굴 옆모습을 특징적으로 잡아내 그린 작품 <잭>을 가리키며 “그림은 팝적이지만 액자는 뮤지엄에 걸린 것과 같지 않으냐”며 “이제 이분법은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의 그림이 사실적이라니….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우리는 이미지로써 대상을 기억한다. 무엇을 보고 어떤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느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은 미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그가 걸친 모자, 안경, 유니폼 등 상징으로 기억한다. 나의 그림은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현대 발레리나인 카테리나의 다양한 동작에다 드레스, 청바지, 데님스커트, 검은 바지 등을 입힌 작품들을 둘러보면,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잘게 분석된 한 인물을 소개받는 느낌이다. “나는 없는 것을 창조하기보다 접근 가능한 기존의 언어로 작업한다. 동그라미로 얼굴을 표현하고 개별적인 동작·패션을 사인처럼 조합한 것은 그런 결과다. 나의 그림은 보편성과 개별성이 혼합된 중간 형태다.”
왼쪽부터 그의 작품 <세퀸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앤> <잭, 프린터> <데님스커트를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 <레이스 블라우스 차림의 클레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