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유물들. 기원전 4~2세기 호루스 신의 영물인 매의 석상, 기원전 8~6세기 말기왕조 시대의 유물들인 미라 목관과 토트신을 뜻하는 따오기의 조상(왼쪽부터).
[리뷰] 이집트 문명전 ‘파라오와 미라’
“엄마, 저 새 머리 조각이 내가 좋아하는 호루스신이야! ”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차려진 이집트 문명전 ‘파라오와 미라’(8월30일까지)에는, 엄마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꼬마 박사’들이 보인다. 그림책, 인터넷 등을 접하며 이집트에 대한 ‘지식내공’을 쌓은 아이들은 머릿속에 눌러 넣었던 유물들 이미지를 실물로 확인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아이들은 좋아라 하지만, 이번 전시는 눈요기로는 빈약하다. 400년 전통을 지닌 오스트리아 국립 빈 미술사 박물관의 이집트 컬렉션 일부를 들여왔지만, 볼거리의 규모 측면에서 맞춤하는 컬렉션은 아니다. 평민, 귀족의 미라 4구가 국내 처음 들어왔다지만, 숱하게 도판으로 본 투탕카멘, 람세스왕 같은 카리스마는 없다. 신과 파라오, 고대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1실의 출품작들은 올망졸망하다. 동물신 소상, 고양이·악어 미라, 중소 규모의 스핑크스 상과 파라오상, 파피루스 조각과 소담한 크기의 장신구류들이다. 2관의 미라실로 가기 전까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이들도 적지않을 터다.
작은 전시품들이 지닌 뜻밖의 미덕은 세부를 눈여겨보면 나온다. 바로 고대인의 유치하기까지 한 삶의 흔적들이다. 얼굴이 다 떨어져 나간 세라페움 신전 앞 스핑크스의 몸에 그리스 글자로 뒤죽박죽 새겨진 ‘나 왔다간다’는 식의 낙서들, 엄숙하기 그지 없는 아멘호테프 3세의 스핑크스 상에도 지웠어야할 밑그림이 엉성하게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휘갈긴 글씨로 꿀 배달 사실을 적거나 괴발개발 글씨를 연습한 도기조각 오스트라콘, 미라에 감는 붕대에 2000여년전 생생한 필적으로 긁적거린 사냥 장면 드로잉은 친숙한 전율을 불러 일으킨다. 이집트 조각들이 대칭과 규칙성만 좇은 것도 아니다. 기원전 4세기 말기왕조 시대의 소를 물어뜯는 사자상에서 실룩거리는 다리와 이빨을 드러낸 얼굴 근육 묘사는 2000여년을 초월한 생명력 그 자체다. 기원전 3~2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만든 여인의 토르소는 지극히 육감적인 허리와 가슴, 배꼽의 굴곡으로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고대 근동 조각의 활력, 저 유명한 그리스 고전 조각의 우아한 포즈를 한껏 받아들인 산물이다.
이 전시에서는 공교롭게도 지난 4월27일 개막식 때만 돌풍과 비가 쏟아지고, 축사를 할 때 계단에서 축하 공연용 북이 굴러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수만리 밖에 전시 나들이를 나와야했던 미라와 파라오의 심술일까. 대박의 징조일까. (02)2077-9263.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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