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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조용히 배려하는 디자인…비결은 공공마인드

등록 2009-05-12 22:54

자생하는 자작나무를 가공해 만든 소파. 기능을 최우선시하는 북유럽 디자인은 자연친화적이고 사용자 중심적인 점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인으로 꼽힌다.
자생하는 자작나무를 가공해 만든 소파. 기능을 최우선시하는 북유럽 디자인은 자연친화적이고 사용자 중심적인 점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인으로 꼽힌다.
‘북유럽 디자인전’
밋밋해 보이지만 모든 것 고려
핀란드 거주 안애경씨가 기획
“한국에서는 겉모양만 옮겨놔”
요즘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내 공공디자인 분야에서도 도입·적용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현지에 가보지 않은 이상 일반인은 진짜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정부나 기업에서 들여온 북유럽 디자인이 가짜라거나, 적어도 왜곡됐음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있다.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의 ‘북유럽 디자인전’이다.

조용한 전시장은 핀란드 현지에서 가구·집기를 생산·판매하는 20여개사(디자이너)의 제품들로 노천카페, 식탁, 거실, 어린이 놀이터 등등을 꾸며 놓았다. 언뜻 보아도 이들 디자인이 간결하면서도 기능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구의 카페. 사정상 마실 거리를 팔지 않으나 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노천임을 고려한 피브이시(PVC)와 금속 재질의 둥근 탁자와 의자들. 쉽게 조합해 공간 연출이 가능하고 포개면 작은 공간에 수납할 수 있다. 종이로 만든 일회용품이 없는 게 특징.

다음 방에 꾸며진 식탁. 핀란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호수와 그곳에 날아드는 새들을 가져왔다. 초꽂이 또는 견과류를 담는 그릇은 호수의 곡선 테두리를 닮았고 유리로 만든 청둥오리가 장식용으로 앉아 있다. 언뜻 밋밋해 보이는 유리컵과 잔은 50여년 전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어 지금까지 그대로 생산되는 것이란다.

핀란드 이탈라사의 식탁 집기들. 호수의 나라답게 호변과 물새를 응용한 것이 눈에 띈다
핀란드 이탈라사의 식탁 집기들. 호수의 나라답게 호변과 물새를 응용한 것이 눈에 띈다

거실 공간에는 견결한 구조의 각종 의자와 소파, 탁자, 조명등이 있다. 핀란드에서 가장 흔하다는 자작나무가 주 재료. 얇게 저며 여러 겹을 붙인 뒤 구부려 안정된 구조를 삼고 그 사이에 뉜 몸을 지탱하는 받침을 최소한의 접점으로 붙였다. 군더더기 없이 구조와 기능이 노출돼 있어 이것으로 몸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부를 정도다. 그 밖에 수납과 놀이 공간을 겸한 아이들 가구, 엘이디(LED) 조명을 단 그네, 익살스런 대형 책·걸상이 있다.

또다른 특징은 아이들이 놀다 갈 수 있도록 만든 공간. 어른용을 깜찍하게 만든 앉은뱅이 탁자와 의자들. 그리고 나뭇결을 살린 육중한 탁자 세트는 워크숍용이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닙니다.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명품에 익숙한 한국인 눈에 북유럽 가구는 썰렁해 보이지요. 기능 위주로 디자인한 그곳 가구는 인간과 사회 환경을 고려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전시를 만든 이는 기획자 안애경씨. 핀란드에 오랫동안 지낸 그는 북유럽 사람들이 소중히 이어온 전통과 자연에 대한 생각,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적인 모습 등이 어떻게 디자인에 담겼으며, 이런 디자인이 다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공유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북유럽에는 공공디자인이란 용어가 없다”고 했다. 디자인 자체에 공공성이 녹아 있어 ‘있는 듯 없는 듯’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자이너들 역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지만 결과물인 제품들은 한군데 모아 놓으면 서로 부닥치지 않고 잘 어울린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공공성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홍보용 대형 책상과 의자. 광고에도 일회성보다는 은근함과 유머를 불어넣었다.
홍보용 대형 책상과 의자. 광고에도 일회성보다는 은근함과 유머를 불어넣었다.
문제는 현지 디자인을 짧은 시간 사진으로 찰칵찰칵 찍어와 이식한다는 것. 그 속에 담긴 인식과 철학, 사회 제도에 대한 고민 없이 겉모양만 수평이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게 안씨의 말이다. 그는 앉는 바닥에 칸나눔 나무토막을 박아놓은 한국 공원벤치를 예로 들었다.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했다는데, 원래 용도를 비틀어 이상하게 만들 게 아니죠. 노숙자를 줄이려는 노력이 앞서야 하지 않겠어요?”

워크숍을 곁들이는 뜻은 디자인의 의미를 함께 전달하려는 배려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은 사회 제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버리는 헝겊, 실, 바늘, 가위를 가져와야 한다. 10명이면 10가지 헝겊이 된다. 그것으로 목걸이도 만들고, 헝겊 인형도 만들어본다.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재활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모여 커다란 가치를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곳 아이들은 일고여덟 살이 되면 남녀 구분 없이 재봉, 톱질, 망치질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상업적인 명품, 또는 정부에서 내세우는 가치 등을 담은 기성품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삶을 살게 되지요.”

전시와 워크숍은 24일까지. (02)379-7037.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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