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하용석 개인전
‘하용석 작가를 아시나요?’ ‘퍼포먼스 작가 하용석이 회화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이런 말에 작가는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시작은 어쩔 수 없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친 건 지난해 말 부산시립미술관 기획전인 ‘부산의 발견 2008’. 4명의 중견작가를 조명한 전시에서 원색의 거친 붓질로 여과 없이 드러낸 하씨의 내면 심상은 발군이었다.
하씨는 그림처럼 젊지 않다. 세는나이로 쉰 살. 잊혀졌을 따름이다. ‘겨울의 전국일주’(1992), ‘휴전선 155마일’(1995) 등 국토를 종횡으로 가르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풀어냈던 그는 언론의 총아였다. 1980~90년대 제도권 미술은 물론 민중미술 운동에 겁 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3의 기치를 들었다. 몸의 작가, 열정의 작가였던 그는 1992년 미국 뉴욕 피에스원(PS1) 뮤지엄의 국제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이강소, 김수자에 이어 세번째 주자로 초청됐다. 2001년 귀국 때까지 10년 동안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을 체험했다. 미국에 체류중이던 1995년 첫 광주 비엔날레에 초청돼 전시장을 때려부순 뒤 그 위에 도끼를 던져두는 ‘짓’을 하기도 했다. 미국 10년은 ‘잊혀진 작가’였고 귀국하고 부산으로 귀향한 뒤로는 ‘지역작가’가 됐다.
그런 그가 최근 작품을 들고 와 서울에 판을 벌였다. 지난 7일 시작한 서울 청담갤러리의 개인전은 회화라기보다 퍼포먼스 흔적이다. 배경에서 천천히 흐르던 의식이 형상으로 접근하면서 점점 급물살을 타 화룡점정으로 마침표를 찍는, 생각과 행위의 순서가 화폭의 붓놀림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들이다. “젊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해 전국을 누볐지만 이제는 작은 캔버스에도 우주를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몸을 붓 삼았지만 실제로 붓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로비용 초상화 공모에 뽑혀 극사실 초상화를 그린 것은 일종의 존재 증명이었다. 이번에 건 30여점은 창고에 쟁여진 250여점 가운데 일부다.
빨강·노랑·파랑 삼원색 중심의 그림은 외로움이자 자신감. 몸의 에너지가 화폭으로 옮겨왔다. 퍼포먼스를 비롯한 그동안의 역정이 모두 그림 원천이 된 듯싶다. 커다란 붓질 한 번으로 표정을 결정하는 것 역시 손끝 솜씨가 아니라 갈고닦은 내공이다. 오랜만에 보는 시원한 작품들이다. 20일까지. (02)511-9051. 임종업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