먀오샤오춘 디지털미디어전
먀오샤오춘 디지털미디어전
“복권처럼 주어진 삶. 아담은 로봇, 이브는 팔 없는 비너스. 만일 모가지 길이가 다양했다면 어땠을까. 슈퍼마켓에서 벌어지는 사냥과 채집. 길의 주인은 기름과 엔진으로 달리는 철마로 바뀌었다. 인간은 장기판 졸과 같고 무기와 전쟁은 자꾸만 업그레이드되고. 키보드 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춤. ‘엔터’ 키 툭 치면 수만년 문명은 몇 초만에 끝날 것을.”
중국 작가 먀오샤오춘의 <마이크로코즘>은 몇 번 보아도 새롭다. 15분짜리 애니메이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인류 문명과 역사, 작가의 역사관이 담겼다.
작품은 컴퓨터 3차원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가상세계. 전지전능 시점의 작가는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세계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인류를 마냥 조롱한다. 부르델, 다빈치, 고야, 백남준 등의 작품도 부속품일 뿐이다. 작품의 뼈대는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의 3부작 제단화 <쾌락의 정원>이다. 천국과 지상, 지옥이라는 상하 구조를 9개 관점으로 본 병풍으로 만들고, 다시 동영상과 소리를 넣은 비디오로 만들었다. 구조는 차용하되 내용은 전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다양한 등장 인물들을 작가 자신의 몸을 스캔한 아바타로 치환한 것. 중세 때는 예수 등 성경의 인물을, 문화혁명 때는 노동자-농민-병사를 등장시켰듯, 우리시대는 가장 개인적인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 작가는 미켈란젤로가 근육질 남녀를 아바타 삼은 예를 따랐다고 말한다.
예술사와 사진을 공부한 작가는 중국의 도시화를 사진에 담다가 2002년부터 디지털미디어로 눈을 돌렸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최후의 심판> <물> 등은 미켈란젤로, 티치아노의 작품을 빌려와 재해석했다. 평면을 입체로, 당대 세계관을 지금 세계관으로 바꾸어 뼈대만을 재활용했다. 작가가 대담한 건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으되 서양인이 아니기 때문. 정답을 맞혀야 하는 부담이 없는 까닭에 작가가 보여준 해석의 자유로움은 독창의 차원으로 진화한다.
작업의 기본은 작가의 스케치. 이를 바탕으로 직원 수십 명이 매킨토시 동영상으로 만든다. 작업실은 공장을 방불케 한다. 작품의 재해석과 똑같이 재해석한 생산 방식이다. ‘먀오샤오춘’ 전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우와 롯데 아트 갤러리(롯데 본점 에비뉴엘 9층)에서 22일까지 열린다. (02)725-2930.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갤러리 나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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