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작가 ‘샌정’ 유화전
남성 작가 ‘샌정’ 유화전
작가 샌정은 남성이다. 하지만 작품만 봐서는 섬세함에서 똑 여성이다. 그의 작품은 유화다. 하지만 얇고 투명함에서 꼭 수채화다. 소재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들. 특히 소녀가 화폭 중심을 차지하고, 눈을 들면 언뜻 들어오는 나무와 하늘, 호수와 언덕이 모호하게 소녀를 에워싸고 있다.
작가는 기억이 소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리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인상이다. 시간의 우물에서 우수리 형태와 색이 녹아 없어진 졸가리 기억에다 작가만의 형과 색을 재부여하는 것이다. 기억을 거친 대상은 특징적인 것만 남는다. 옷의 물결 문양, 여인의 볼 터치 등 특정 부분이 선명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머지는 분위기만 남을 뿐이다. 그림이 최소한의 색과 형태만을 띠며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맑은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섬세함은 결정적 순간이 최소의 터치로 완성되면서 발생한다. 싱싱한 딸기맛을 음미하는 순간, 차가운 호숫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장미 향기에 취해 눈을 감은 순간 등. 그 순간은 딸기를 잡은 손, 물에 닿은 발끝, 살포시 감은 눈, 새의 날갯짓 등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셀 수 있을 정도로 결핍된 터치는 잡아낸 결정적 순간과 대조되면서 상상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를 두고 ‘의도된 결핍’이라고 했다.
섬세함은 또다른 방식으로 보완된다. 탈색된 대상이 기억의 환기를 따라 창백한 초록과 회색, 청색을 부여받게 되는 것. 지시적인 시공간 배경은 추상적인 공간, 즉 맑은 공기, 청량한 아침, 음울한 저녁 등으로 바뀌고 작가가 잡아낸 순간적인 포즈와 함께 꿈속에서처럼 바뀐다.
‘숲속의 대기’라는 제목을 단 그의 전시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7월12일까지 열린다. 독일 뒤셀도르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 작가는 7월부터 예술가 거주 창작(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하나로 미국 뉴욕에 머물며 작업하게 된다. (02)735-8449.
임종업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