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화가 이상원(74)씨
이상원 개인전 ‘동해’
“극장 간판과 초상화를 그린 20여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겁니다.”
극사실화가 이상원(74·사진)씨의 공식 이력은 마흔한 살인 1975년부터 시작된다. 10대 말 춘천에서 상경한 이씨는 극장 간판을 그리게 됐다. 곧 스카라, 대한, 단성사 등 서울은 물론 부산, 마산, 대구 등의 극장들을 주름잡았다. 대한극장 6, 7층 전면을 채웠던 <벤허>는 주인공 입술이 2m에 이를 정도로 큰 그림이었다. 사다리를 올라가 긴 대나무에 분필을 꽂아 스케치를 할 정도.
이어진 것은 미군 초상화. 위컴 8군사령관, 험프리 부통령 초상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1970년께 안중근 의사 초상화를 그린 계기로 정·재계 인사들의 초상도 그렸다.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선친 등등. 정 회장은 선친이 아들(정몽헌)과 닮았다면서 아들 머리를 깎여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1960년대 그의 그림삯은 집 한채 값. 이때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다. “당신은 화가가 아니다. 손재주가 뛰어날 뿐이다.” 1970년대 초 문인 이은상씨의 일침에 붓을 꺾었다. 그 뒤 2, 3년 동안 절치부심해 한 트럭 분량의 종이를 썼다. 1978년 동아미술제 등에서 특선하면서 늦깎이 화가가 됐다.
먹으로 시작한 작품에 20여년 동안의 오일 경험이 배어 ‘서정적 극사실화’가 탄생했다. 그의 관심은 삭아서 문드러지는 것에 생명을 부여하기. 터진 조개껍질 자루를 그린 <마대의 얼굴>, 논바닥 트랙터 자국을 담은 <시간과 공간> 등. 바닷바람에 찌든 늙은이를 그린 <동해인>을 거쳐 인도 바라나시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그리게 된다. 베이징 중국미술관(1998년), 모스크바 트레차코프미술관(2005년) 등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8월12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동해’에는 쏨뱅이 그림 20여점이 걸렸다. 그는 하도 못생겨 ‘삼식이’로 불리는 이 물고기를 “자화상이라 생각하며 그렸다”고 말한다. (02)730-0030.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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