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코드 세개로 자본폭력 공격 ‘펑크 1세대’

등록 2009-07-14 18:48

라몬스의 <블리츠크릭 밥>(1976년)
라몬스의 <블리츠크릭 밥>(1976년)
[세상을 바꾼 노래 83] 라몬스의 <블리츠크릭 밥>(1976년)
음악적 형식이 아니라 개념적 실재로 우선했다는 측면에서, 펑크는 블루스와 닮은 점이 있다. 요컨대, 블루스가 ‘정서’라면 펑크(punk)는 ‘태도’다. 블루스가 억압적 현실에 대한 흑인 노예의 정서 속에 싹튼 것처럼, 펑크는 폭력적 자본을 향한 아웃사이더의 태도에서 발아한 것이었다.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형식의 문제는 그다음에 왔다. 블루스의 정서가 오랜 시간을 거쳐 12소절 기본 형식으로 정착한 것처럼, 펑크의 태도는 분방한 실험 속에서 3코드의 단순한 패턴으로 귀착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블루스의 12소절 형식은 창안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반면에 펑크의 3코드 전형은 원조가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라몬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라몬스는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욕의 ‘시비지비’(CBGB) 클럽에서 데뷔한 펑크 1세대 가운데 하나다. 패티 스미스, 딕테이터스, 토킹 헤즈, 텔레비전, 블론디, 수어사이드 등과 함께 주류 음악계의 흐름과는 철저히 무관하거나 역행하는 사운드를 실험했다. 주목할 것은, 라몬스를 포함한 그들이 처음부터 펑크라고 불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뒷날 각각 비평가와 만화가로 이름을 새기게 되는) 렉스 맥닐과 존 홀름스트롬이 조악한 인쇄물의 팬진을 발간하며 <펑크>란 이름을 붙인 것을 계기로, 시비지비 클럽의 반주류적 뮤지션들을 아우르는 총칭으로서 펑크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음악적 동류가 아니라 대안적 연대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오직 태도에 있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그들 각자의 스타일은 천차만별이었다. 비평가 존 새비지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펑크는 “거기 속하는 그룹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상이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라몬스의 만화 같은 속성, 토킹 헤즈의 사립학교 학생 같은 태도, 수어사이드의 적대적 방식, 블론디의 헐떡대는 1960년대 팝 스타일, (텔레비전의 창단 멤버인) 톰 벌레인과 리처드 헬의 세기말적 퇴폐의 낭만주의”까지 각양각색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몬스가 발표한 첫 싱글이자 데뷔 앨범의 오프닝 트랙으로서 ‘블리츠크릭 밥’의 음악사적 의미가 돋보이는 이유도 거기 있다. 당대 다양한 양상들이 ‘뉴 웨이브’라는 개념으로 분화하면서 그들의 직선적이고 단순한 3코드 양식이 펑크의 전형으로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분 남짓 짧은 연주시간 내내, ‘돌격전’이라는 제목 그대로, 시종일관 질주하는 이 노래는 라몬스 사운드의 표본이다. 거칠고 조악한 리프에 이어지는 “헤이! 호! 레츠 고!”라는 외침은 뒷날 라몬스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로 자리잡기도 했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이미지와 실없게 들리는 노랫말도 그렇다. 비평가 톰 카슨은 펑크의 문자적 의미가 “무법자로 행세할 만한 자신감도 없는 절망적인 낙오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라몬스는 자신들의 그런 면을 포장하기는커녕 스스로 부적응자임을 찬양했다”고 썼다. 거기에는 “섬뜩하고 짜릿한 위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몬스의 펑크는 로큰롤의 반항이 기성을 거스르는 즐거움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 각성제에 다름 아니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