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 두번째 내한 공연을 펼치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사진 오른쪽에서 둘째)와 밴드 멤버들. 액세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15일 서울공연 나인 인치 네일스 단독 인터뷰
‘산업’, ‘공업’의 의미를 담은 이름처럼 인더스트리얼 록 음악은 기계적 비트에 강렬한 록을 더한 음악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트렌트 레즈너라는 뮤지션이 이끄는 사실상의 원맨 밴드다. <프리티 헤이트 머신>, <더 다운로드 스프라이얼> 등 수많은 명반들을 내며 인더스트리얼 록 음악의 상징적 존재로 군림해왔다. 8월15일 이티피(ETP) 페스티벌을 위해 한국을 찾는 트렌트 레즈너와 단독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인더스트리얼 록의 대가…ETP 페스티벌 참가 두번째 내한
“한국팬들 열정적…실험적 록 하는 아티스트로 불리고파”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지난번 한국 공연은 어땠나? “너무나 즐거웠다. 관객들이 굉장히 열광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고기를 먹었는데 매우 맛있었다. 이번에도 꼭 먹고 싶으니 불을 지펴놓길 바란다.(웃음)” -인더스트리얼 록의 대표적인 밴드로 불려왔다. 본인은 그런 분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더스트리얼 록은 언론에서 분류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고 본다. 우리가 처음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 때 우리와 같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를 칭하는 또 하나의 분류가 필요했을 것 같다. 올바른 장르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실험적 록을 하는 아티스트라고 불리길 바란다.”
-자체 레이블을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당신의 음악을 온라인에서 무료배포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미국에서는 이제 음반 가게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새 음반이 나오면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들어보던 재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음악이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 죄책감 없이 노래들을 ‘훔치고’ 있다. 시디를 발표하기도 전에 이미 내려받기를 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새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메일을 보내주고, 원하면 우리 사이트를 통해 내려받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물론 원한다면 시디를 구입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뒤 굉장히 많은 앨범이 판매되었고, 적어도 적자는 면할 수 있었다.” -처음 데뷔했던 1988년과 비교해 음악 산업이 많이 바뀌었다고 보나? “음악 산업은 한마디로 ‘자살’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음악이 아닌 하나의 제품을 찍어내어 그것을 통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진정한 음악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요즘도 많은 음반 회사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진심으로 마음 아팠던 적은 거의 없었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메이저 음반사와 함께하지 않는 게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하고 싶은 음악을 아무 간섭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이전에는 앨범을 만들기 전 끊임없는 회의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전하고 설득해야 했지만 이젠 그런 불필요한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내가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이티피 페스티벌에선 어떤 공연을 보여주려 하는가? “우리 앨범의 곡들을 조금씩 다 연주하려 한다. 우리는 음악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연주만이 팬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투어를 마치면 당분간 활동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투어가 9월 초쯤 끝날 예정이다. 투어가 끝나면 음악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 지난 5년 동안 계속 투어를 하고 있는데 나 자신이 너무 안일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에서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김학선 객원기자 studiocarrot@naver.com
“한국팬들 열정적…실험적 록 하는 아티스트로 불리고파”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지난번 한국 공연은 어땠나? “너무나 즐거웠다. 관객들이 굉장히 열광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고기를 먹었는데 매우 맛있었다. 이번에도 꼭 먹고 싶으니 불을 지펴놓길 바란다.(웃음)” -인더스트리얼 록의 대표적인 밴드로 불려왔다. 본인은 그런 분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더스트리얼 록은 언론에서 분류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고 본다. 우리가 처음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 때 우리와 같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를 칭하는 또 하나의 분류가 필요했을 것 같다. 올바른 장르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실험적 록을 하는 아티스트라고 불리길 바란다.”
-자체 레이블을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당신의 음악을 온라인에서 무료배포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미국에서는 이제 음반 가게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새 음반이 나오면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들어보던 재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음악이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 죄책감 없이 노래들을 ‘훔치고’ 있다. 시디를 발표하기도 전에 이미 내려받기를 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새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메일을 보내주고, 원하면 우리 사이트를 통해 내려받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물론 원한다면 시디를 구입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뒤 굉장히 많은 앨범이 판매되었고, 적어도 적자는 면할 수 있었다.” -처음 데뷔했던 1988년과 비교해 음악 산업이 많이 바뀌었다고 보나? “음악 산업은 한마디로 ‘자살’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음악이 아닌 하나의 제품을 찍어내어 그것을 통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진정한 음악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요즘도 많은 음반 회사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진심으로 마음 아팠던 적은 거의 없었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메이저 음반사와 함께하지 않는 게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하고 싶은 음악을 아무 간섭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이전에는 앨범을 만들기 전 끊임없는 회의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전하고 설득해야 했지만 이젠 그런 불필요한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내가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이티피 페스티벌에선 어떤 공연을 보여주려 하는가? “우리 앨범의 곡들을 조금씩 다 연주하려 한다. 우리는 음악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연주만이 팬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투어를 마치면 당분간 활동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투어가 9월 초쯤 끝날 예정이다. 투어가 끝나면 음악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 지난 5년 동안 계속 투어를 하고 있는데 나 자신이 너무 안일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에서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김학선 객원기자 studiocar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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