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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촉촉한 펜촉과 구수한 입담의 만남

등록 2009-08-05 21:21

극작가 김효진(30)씨
극작가 김효진(30)씨
국악뮤지컬 올리는 극작가 김효진씨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 6일부터 공연




“옛날 옛적 육지 출신의 총각 과자 오감자가 있었단다….”

‘곰보’라는 친구들의 놀림에 우는 아들을 달래려고 엄마 ‘오징어 땅콩’이 말한다. 어느 날 ‘오감자’는 바다가 고향인 처녀 과자 ‘꽃게랑’에게 반하는데, 안타깝게도 둘은 원수 집안의 아들딸. 가혹한 운명은 두 과자의 사랑을 죽음으로 갈라놓았다. 자녀를 잃은 뒤 두 집안은 증오의 칼을 거두었고, 화해의 상징으로 ‘오징어 땅콩’이 태어나게 됐다는 것.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발하게 패러디한 이 이야기는 6~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국악뮤지컬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의 에피소드 중 하나. 극작가 김효진(30·사진)씨의 작품이다.

“제가 아니라 소리꾼(배우)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틀거지는 제가 만들었지만, 판소리로 바꿔 작창(作唱: 소리로 만들어 부르는 것)한 건 소리꾼들이니까요.”

입에 발린 겸손은 아니다. 국악뮤지컬에서 입에 맞게, 음역에 맞게 대사를 고치는 건 소리꾼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디 줄거리와 뼈대 구성은 온전히 김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

“여기 등장하는 해물 과자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온 동네 가게를 뒤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과자 이야기’가 박광현 감독의 ‘조선 나이키’와 더불어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타루의 레퍼토리가 됐다.

김씨는 서울 대학로에서 촉망받는 극작가다. 현재 대학로에선 그의 작품인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웨딩펀드>가 동시 공연중이다. 나온씨어터에서 공연중인 <오월엔…>은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 여성들의 고민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 <웨딩펀드>는 원작의 완성도를 눈여겨본 뮤지컬 제작자가 판권을 구입하면서 공연이 성사됐고, 영화사도 판권을 사들여 내년 9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연극·뮤지컬·영화의 해트트릭을 기록한 셈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던 건 아니다. 2007년 <오월엔…> 초연 때는 관객들의 냉랭한 반응에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다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취직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때 어느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진짜 사랑을 해 본 사람이 쓴 것 같아. 사랑 이야기를 쓰려면 그렇게 써야지’라는 말씀에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어요.”

제작자들은 김씨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로 ‘늘 촉촉이 적셔진 펜촉’을 꼽는다. 그의 텍스트에는 굳은 잉크의 말라비틀어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지면이나 거닐 법한 죽은 단어나 표현이 없다는 말이다. 가는 펜촉으로 텍스트에 미세한 감정선을 그려 넣는다. 예민한 촉수가 없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용도 폐기된 소재들도 그의 펜을 거치면 숨을 쉬게 된다. 그래서 작품에 생기가 돈다.

김씨는 내년 상반기 올릴 연극 <손숙의 모노드라마>와 내년 하반기 공연 예정인 뮤지컬 <완득이>도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내’ 작품이 아닌, ‘우리’의 작품이며, 세월의 더께와 함께 ‘우리’의 작품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연극에서 뮤지컬로, 또 영화로 영역을 넓혀온 김씨의 꿈은 소박하다.

“연극이나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연극에서 시작했으니까, 연극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굳이 스펙트럼을 넓히지 않아도 좋다. 선발 출전에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니. 이제 또 다른 해트트릭을 기대해 볼 만하다.

글 김일송 씬플레이빌 편집장 ilsong@sceneclub.com

사진 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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