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섭 작 〈S.S_1-19/B.D 85〉
이장섭 사진전 ‘분절공간’
약육강식의 논리는 사람과 동물들 사이에만 있는 건 아니다. 거대 주상복합 빌딩들이 뚝딱 세워지는 대도시 서울의 도심 재개발 현장에도 이종격투기 같은 건축물들의 생존 다툼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작가 이장섭씨는 사냥꾼처럼 건축물 사이의 약육강식 현장들을 쫓아다닌다. 서울 도심 곳곳을 떠돌다가 반반한 신축 건물과 후줄근한 저층 빌딩, 옛 기와집, 가건물 등과의 기싸움(대개는 일방적이지만)이 포착되는 지점을 발견하면 저격수처럼 근처 건물로 올라간다. 그리고 건조한 시선으로 카메라 앵글을 잡는다. 서울 관훈갤러리(18일까지, 02-733-6469)와 서울 이문동 스페이집 갤러리(9일까지, 02-957-1337)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사진전 ‘분절공간’은 도심 건축 공간 속의 권력 관계를 나름의 시선으로 헤집어 본 결과물들을 모았다. 전시장에는 종각, 청계천변, 광교, 소공동 일대에서 낯선 각도로 찍은 건물 사진들이 등장한다. 대개 지역의 랜드마크인 대형 빌딩과 그 뒷면의 볼품없는 옛 건물들 사이의 대립 구도를 건물선과 배경의 대비로 투영한다. 비닐 포장 덮인 허름한 상가, 공장의 가건물, 기와집, 낡은 저층 콘크리트 건물들이 대형 빌딩군의 뒷면이나 전면에서 올망졸망 모여있거나 웅크린 품새로 포착된다. 작가의 시선이나 피사체인 건축물들은 모두 어정쩡하게 떠 있다. 고공이나, 고층이 아닌 저층이나 중층의 건물 높이에서 주관을 절제하며 찍은 것이다. 평론가 박해천씨가 전시 평문에서 분석했듯 이런 구도는 옛 공간의 향수에 얽힌 ‘낭만 과잉의 정서’를 지닌 산보객의 시선과 부동산 이권에 포박된 조감도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옛 일제 적산가옥의 네모지고 둥근 기하학적 창틀과 그 옆의 미니멀한 격자창의 새 빌딩, 수직축을 취하며 늘어선 빌딩군 전면에서 투박한 용마루와 기왓골을 드러내며 가로로 뻗은 인사동 기와집, 고층 빌딩군에 딸린 난쟁이 장난감 느낌을 주는 소공동 옛 업무용 건물 등에서 선과 형체가 부대끼는 조형물의 구도로 건축물의 부침을 읽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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