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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텅 빈 공간,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록 2009-08-18 17:56

강호를 떠나다
강호를 떠나다
최인호전 25일까지
‘벽’ 등 50여점 상처입은 과거 토설
뙤약볕에서도 그의 쓸쓸함은 한기가 들 정도다.

그는 출구 없는 방에 허물어져 있거나 창문이 있어도 창틀에 기대어 하염없이 밖을 내다본다. 서너 길 콘크리트 담 역시 그가 자폐적임을 두드러지게 할 따름이다. 그것은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거리를 정처 없이 서성거리는 모양에서도 드러난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 최인호(50)씨가 작품 50여점을 들고 상경했다. <숨어 있기 좋은 방> <벽>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서성거리다 혹은 짝짓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입을 다물다> 등 그의 작품은 고독이 주제다.

최씨의 작품은 텅 빈 공간이 대부분이다. 방, 숲, 벽, 거리 등 ‘쓸쓸함’ 기표에다 ‘혼자’, 혹은 ‘제각각’임을 나타내는 기의를 담았으니 그럴 수밖에. 그 공간에다 재 또는 종이죽 혹은 황토를 섞은 청, 연두, 보라색 아크릴로 채워 쓸쓸하기가 더할 나위 없다.

개념적인 작품이 횡행하는 화단에 그의 서정적인 작풍은 화석과 같다. <어린 왕자> <숨어 있기 좋은 방>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소설의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쉰 줄에 든 작가의 주제가 ‘쓸쓸함’이거니 퇴행적이라 할 만도 하다.

그렇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트라우마 때문. 중3 때 새살림 차린 부모한테서 떨어져 나온 그는 지금껏 35년째 혼자다. 거북등처럼 단단한 거죽이 열린 것은 프랑스 파리에서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도불 10년을 결산하는 전시를 열어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던 그는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했고 화구를 팽개쳐두고 생판 낯선, 정인의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6년을 사랑했고 어쩔 수 없어 그를 보낸 지 7년이다.

그는 지난해 부산 오륜동 옛 버섯공장에 숨어 들었다. 거기서 참나무 태운 재와 종이죽과 황토와 아크릴을 섞어 만든 안료로써 상처 입은 과거를 토설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모두 200여점. 예술감독, 무대장치, 인테리어, 조형물 작업 등 그동안의 잡일 경험도 그의 작품을 도왔다.

“50년을 품었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과거를 떠나보내는 의례다.” <첫 꿈>의 곡진함이 다하면 앙상한 뼈가 드러날 터. <샤워중>인 그의 몸에 결기가 서렸다. 강호를 떠나 부모와 화해를 하고 사회와도 화해하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19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 (02)725-1020.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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