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문명의 더께 벗고 대도시 폐허 속으로…

등록 2009-08-26 18:53수정 2009-08-26 20:47

글렌우드 발전소, 뉴욕 2007
글렌우드 발전소, 뉴욕 2007
김미루 사진전
뉴욕지하철·버려진 공장·발전소 탐험
작가 자신 알몸 가상동물로 넣어 화제
쥐를 따라 미국 뉴욕의 지하철 터널로 들어간 스물다섯 처녀는 스물아홉에 사진작가가 되어 나왔다.

죽음처럼 내려앉은 어둠과 정적.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쇠지렁이 같은 열차. 통풍구를 통해 지상의 빛과 수런거림이 희미하게 들어올 뿐. 그곳은 100년 넘은 대도시의 지층이었고 대도시의 무의식이기도 했다. 사진작가 김미루(28·사진)씨는 시간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스스로 쥐가 되어 자신의 사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뉴욕 지하철을 엿본 뒤 도시 탐사에 관심이 생겼다. 도시 탐험가들 틈에 끼어 버려진 지하철역이나 터널, 하수구, 공장, 병원, 조선소 등을 헤맸다. 그곳의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던 그는 바로미터로 가상의 동물을 삽입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이 가장 쉬운 선택이었고, 벌거벗음으로써 스스로 동물이 되었다. 무수한 시간이 충적된 그곳에서 옷이란 덧없음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사진 속으로 들어간 것은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리비어 설탕 공장. 1985년 문을 닫은 이래 20년 넘게 방치됐던 곳. 그곳에는 들개, 백조, 오리, 쥐들이 서식하고, 설탕 통에는 커다란 벌집이 있었다. 더 이상 인간의 공간이 아닌 자연의 공간이었던 것. 작가는 벌거벗음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웠고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김미루(28)씨
사진작가 김미루(28)씨
김씨의 특장은 본거지인 뉴욕에서 잘 드러나, 윌리엄즈버그 다리, 맨해튼 다리, 베넷 여대 강당, 프리덤 터널, 글렌우드 발전소, 옛 크로톤 수로, 선박 폐기장 등 뉴요커가 아니면 잡아내기 힘든 장면을 잡아냈다. 작업은 미국의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로 확장되었고, 급기야 캐나다 몬트리올,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지로 나아갔다. 올해 5월에는 한국의 모래내, 금호동, 애오개 등 철거 지역과 영화 <괴물>을 찍었던 하수로에도 출몰했다.

그의 사진이 도시탐험가의 사진과 다른 것은 벗은 몸으로 사진에 들어감으로써 다큐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 퇴락한 거대 구조물과 작고 가녀린 인체가 대조되면서 사진은 무수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간이 만든 거대도시의 퇴적된 지층은 물론, 시간의 덧없음과 인간의 나약함, 불변의 문명이라고 여길 법한 것들의 한시성 등등. 작가는 과거의 시간으로 갔지만 그가 끊어낸 시간은 현재와 격절됨으로써 초현실이 된다. 마치 심판의 날 뒤 최후로 살아남은 인간을 찍은 것처럼. 파리의 지하 카타콤 납골당의 뼈무더기, 맨해튼 다리 수백 피트 위에서 바라본 강 건너의 야경, 파리 생 자크 탑 꼭대기 위에 걸린 달 등은 작가의 알몸과 더불어 중세, 또는 현대의 전설을 들려준다.

작가는 철학자이자 한의사인 김용옥씨의 막내딸로 뉴욕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도시 탐험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등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아 크게 보도된 바 있다. 김씨의 사진전은 서울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9월13일까지 열린다. (02)519-0800.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