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우환(73)씨
첫 ‘조각’전 여는 이우환씨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중인 작가 이우환(73)씨는 1960년대 일본에서 탈서구적 회화인 모노파를 창시했고, 독특한 철학적 세계를 담은 추상 그림으로 국제적 명성이 높다. 그의 국내 개인전이 6년 만에 열린다. 이씨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28일부터 9월2일까지 열리는 ‘조각’전에 침묵, 대화, 텐션, 사물과 언어, 휴식, 신호, 반응, 불협화음, 삼각형, 바라보기 등 ‘항’(項) 시리즈 작품 열 점을 선보인다. 그가 조각만으로 개인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철판과 바위가 조합된 출품작들은 두 소재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주변과 호흡하는 것이 특징. 쇠와 돌만으로 최소화한 소재는 시각적 알파벳이 되어 관객한테 말을 걸고, 작품이 놓인 입방체 공간은 작품과 밀고 당기며 긴장감을 일으킨다. 국내서는 주로 점·선 시리즈 등의 회화가 유통됐지만, 애초 그는 조각을 출발점으로 삼았고, 외국에서도 조각으로 더 조명 받았다. 지난 26일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이씨는 자신을 민족주의자도, 사대주의자도 아닌 ‘잡탕’이라고 했다. 파리서 활동 ‘모노파 창시자’
6년만에 서울서 개인전
“관객들 막 샤워한 느낌 받길” -전시는 어떻게 준비했나? “반년 전부터 전시 공간을 여러 번 보고, 돌 파는 집과 철판집, 철공소를 자주 다녔다. 돌을 고르고 철판집에서 맞추고 오리는 작업을 한다. 소재인 돌은 최소한 60만년 이상 된 것으로 자연 또는 우주를, 거기서 뽑아낸 철은 인공 또는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공간을 만들고, 만들 수 없는 것 또는 안 만들어진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나는 그러한 ‘사이’를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말하자면 나는 엉거주춤하다.” -작품들은 상대화로 요약되는 것 같다.
“일본으로 가면서 한국이 상대화됐고, 유럽에 가면서 동양이 상대화됐다. 나의 조각 작품도 놓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 사람들은 내 작품을 그냥 철판과 돌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위적 변화로써 만든 것을 조각이라고 보는 성향이 강한 탓이다. 날 모르는 관객들이 돌이 조용하고 철판이 쓰러질 듯하니 참 희한한 장소에 왔다는 느낌, 막 샤워를 한 느낌 등을 받으면 성공이다.” -초기 조각과 지금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큰 변화가 없다. 기왕에 인간이 만든 규정을 박살내자는 뜻에서 시작했던 모노파 그림은 물질을 차용해 말로써 안 되는 부분을 표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뒤죽박죽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소재도 철, 솜, 나무, 전구 등에서 철과 돌로 정리됐다. 두 소재만으로도 살짝 휘고 떼어내는 등 작은 트릭을 가하면 우주 삼라만상을 다 얘기할 수 있더라.” -조각·회화 모두 퍼포먼스의 결과물 같다. “그렇게 믿는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몸으로 하는 것을 피곤해한다. 가상 리얼리티와 정보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 작품의 긴장은 신체성에서 나온다. 내 작품에서 신체성은 살짝 세우거나 휘거나 하는 데서 드러나는데,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작품이 동양적이라고들 한다. “이류 비평가나 하는 말이다. 유럽인들이 동양적이라고 할 때는 뭔지 모르지만 너네들끼리 잘해 보라는 빈정거림이다. 그런 말에 좋아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일본어로 쓰고 생각한다는데 사실인가? “1956년 20대에 한국을 떠나 50여년을 해외에 머물렀다. 일본에 가장 오래 머물렀으니 일본물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프랑스에도 오래 머물러 유럽물도 들었다. 나는 잡탕이다. 순수하지 않다. 일본말이 쓰기에 훨씬 쉽다. 하지만 언어는 문제가 안 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근대화의 뿌리는 유럽이고 유럽은 잡탕이다.” -그동안 여러 오해로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다. “국적이 일본이라느니, 탈주자라느니 별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심지어 얻어맞기도 했다. 나는 한국 국적이다. 바꿀 의도가 없다. 한국 기자들은 추측해 작문기사를 쓰더라. 결혼했나, 애가 몇이냐, 경매값이 얼마냐 등 기자들의 질문이 똑같다. 작품이 전시회, 아트페어, 옥션(경매)을 축으로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작가는 옥션을 싫어한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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