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개인전 ‘아름다운 두려움’
김동연 개인전 ‘아름다운 두려움’
전시장에 든 관객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다. 이상한 나라는 다름아닌 ‘몬스터’(괴물)들의 세상. 오물조물 몬스터들은 기념비를 세우고, 길을 닦고, 집을 만드는 등 일을 하고, 외출해 공연을 보며 여가와 휴식을 즐긴다. 바닥에 놓인 이들 조형물은 일종의 미끼다. 재밌네 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작가가 만든 수렁에 여지없이 빠져든다.
전시장 안 곳곳에는 납작하게 만든 빌딩이 벽걸이처럼, 또는 로드킬처럼 걸렸거나 던져져 있다. 고속도로 교차로는 해체돼 말린 오징어처럼 걸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뒤집어진 호수 꼭대기에서 대화를 하는 데 이르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작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동안의 김동연씨. 40대 초반처럼 보이는 그는 어이없게도 쉰이다. 그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천진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작가는 고개 숙이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시간이 머리 위로 지나가버렸다고 했다. 1988년 독일 뒤셀도르프로 가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모든 장르를 섭렵한 뒤 2005년까지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고, 돌아와 경희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8년 동안 독일에 머문 셈이다. 거기서 아이 둘을 낳아 길렀는데, 그 가운데 딸이 11살이다.
눈이 무딘 관객이 이런 주변지식을 얻고 나면 비로소 작품이 보이기 시작한다. 벽걸이, 로드킬 빌딩과 고속도로는 인간 세상. 인간은 그곳에 갇혀 알을 낳다가 쓸모 없어지면 폐기되는 닭과 같은 존재인지 모를 일이다. 고속도로는 인력과 재물을 실어 날라 대도시로 퇴적시키는 욕망의 강이 아니겠는가. 몬스터들은 빌딩과 길을 채집하여 마치 장식물처럼 걸어두었다.
오물조물 손으로 만든 몬스터는 도자기이고, 몬스터들의 집과 공연장은 정교하게 짜맞춘 나무판(사진 아래)이다. 입체를 평면으로 바꾸어 레이저로 재단한 알루미늄 납작빌딩은 벽에 걸려 그림자를 만들면서 입체와 평면 사이를 오간다. 고속도로 입체교차로는 평면으로 채집된 것이 문명의 징표가 되어 형상과 문자 사이를 넘나든다.
이쯤에서 작품의 비밀이 풀린다. 장르를 넘나드는 노련함은 작가의 것이고 몬스터 동화세상은 11살 딸의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오랫동안 독일의 외로운 밤을 어린 딸한테 동화를 읽어주면서 보냈다고 했다. 작가로 인해 종잡을 수 없었던 관객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딸 덕분이다. 하지만 쉰 살과 열한 살 세계를 이음매 없이 이은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겠는가. 숨겨진 비밀은 작가와 조금 더 친해지면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개인전 ‘아름다운 두려움’은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에서 27일까지 열린다. (02)739-4937~8.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김동연 개인전 ‘아름다운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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