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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돈 때문에 여배우 팔아먹는 실용주의 때인지라…”

등록 2009-09-09 15:06수정 2009-09-09 15:15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명한 서사극 을 한국의 판소리의 기본 사설과 움직임, 타악 및 전자기타의 음악을 바탕으로 삼아 오늘 한국의 상황으로 옮긴 창작판소리이다. 는 여성 예술가들의 힘이 돋보인다. 왼쪽부터 남인우(연출)씨와 소리꾼 이자람, 이승희, 김소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명한 서사극 을 한국의 판소리의 기본 사설과 움직임, 타악 및 전자기타의 음악을 바탕으로 삼아 오늘 한국의 상황으로 옮긴 창작판소리이다. 는 여성 예술가들의 힘이 돋보인다. 왼쪽부터 남인우(연출)씨와 소리꾼 이자람, 이승희, 김소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창작 판소리 ‘사천가’
빈부격차·미쇠고기 등 세태 풍자에 관객 박장대소
시대의 고민·아픔을 걸죽하게 담아낸 ‘젊은 판소리’
“때는 배고픈 신신자유주의, 심지어 차디찬 실용주의 시대로구나. 눈 감으면 코 베어가고, 돈 때문에 여배우 팔아먹고, 돈 때문에 지 부모 찌르고, 돈 때문에 자식 버리고, 돈이 없다고 돈, 돈, 돈! 돈 꿔서 명품 사고, 돈 꿔서 금배지 사고, 돈 꿔서 사랑 사는, 동상이몽 불신상종의 때인지라…”

지난 4일부터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옛 연강홀) 지하1층 소극장 스페이스111에서 이런 요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젊은 소리꾼이 무대에서 판소리 장단에 맞춰 요즘 세태를 걸죽한 아니리와 우스꽝스런 발림으로 늘어놓으면 객석에서 박장대소와 추임새가 터져나온다.

이 독특한 창작 판소리 무대는 독일의 사회주의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의 주요 내용을 오늘날 실정에 맞게 판소리의 기본 사설로 옮긴 <사천가>의 공연 현장이다. 현대무용가들의 코믹한 움직임과 퍼포먼스, 북과 꽹과리, 장구, 전자기타 연주 등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어놓은 신개념의 ‘젊은 판소리’ 무대다. 19살에 <춘향가>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운 젊은 국악인이자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 영화음악 작곡가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전방위 예술가’ 이자람(30)씨가 대본과 곡을 썼다. 2007년 12월 첫선을 보인 뒤로 이번이 세번째 공연이다. 그동안 이씨 혼자서 2시간 넘게 1인 다역을 해야 했던 탓에 2~3일 공연에 그쳤으나, 올해 젊은 국악인 이승희(27) 씨와 김소진(21)씨가 가세하면서 장기 공연의 가능성이 열렸다.

“판소리는 시대의 아픔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정신적 동시대성, 그 시대 다양한 민중의 음악들에 녹아있는 음악적 동시대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자람의 음악적 실험과 스태프들의 시대적 고민, 브레히트의 원작이 만나서 판소리의 동시대성을 담아낼 수 있는 <사천가>가 탄생된 거죠.”

남인우 연출가는 “세번째 공연을 준비하면서 널리 연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 세 소리꾼이 등장하는 장기 공연을 꾸몄다”고 밝혔다. 1980년대에 창작동요 ‘내 이름 예솔아’로 잘 알려진 이씨도 “이제는 소리꾼 동료들과 공연을 나눠서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게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브레이트의 ‘사천의 선인’을 한국 현실에 맞게 각색
코믹 퍼포먼스와 전자기타 연주로 고정관념 뒤집어

“원작 <사천의 선인> 자체가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 자신도 지난해 공연 뒤로 촛불시위, 쌍용차 파업 등과 같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겪으면서 이제는 주제의 표현 방법이 좀더 치밀해졌고 간절함의 깊이가 달라졌다고 느껴져요.”

<사천가>는 대한민국 사천이라는 도시에 사는 착한 사람(선인) ‘순덕’이가 주인공.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의 도움을 받아 분식점을 차리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순덕이가 세상 사람들의 온갖 방해로 어려움 겪는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그렸다. 19세기 원작을 오늘의 이야기로 옮기면서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빈부 격차, 정치 부패, 미국산 쇠고기 문제 등 동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천연덕스럽게 녹여냈다.

“이 작품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정말 잘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공연에 처음 참가하는 젊은 소리꾼 이승희씨와 김소진씨는 “정통 판소리와는 달리 연기 등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국악과 3학년(판소리 전공)인 김소진씨는 윤진철, 주소연, 송순섭씨에게 배웠으며 2006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금상, 2008년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대상 등을 받은 차세대 명창.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나온 이승희씨 또한 조소녀, 김수연, 송순섭, 안숙선씨에게 배운 뒤 2006년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던 재원이다. 남 연출가는 “관객의 반응을 본능적으로 잘 읽어내는 이자람과 처음부터 관객을 힘있게 잡아가는 소진, 여유 있게 공연을 끌어가는 승희, 세 사람의 개성이 돋보이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두산아트센터가 젊은 창작자와 새 작품을 발굴하고 키우기 위한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의 올 첫 레퍼토리 공연. <사천가>는 20일까지 이어진다. (02)708-5001.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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