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훌리 전이 열리고 있는 롯데 갤러리 전시장에서 조개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시폼’ 연작이 보인다
조형예술가 ‘데일 치훌리’전
그의 손을 거치면 유리는 꽃이 되고 조개가 되고 결국 보석이 된다.
‘유리 조형의 거장, 데일 치훌리’ 전이 서울 롯데 백화점 에비뉴엘 9층의 롯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 시애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리조형 예술가 데일 치훌리(69)의 설치 작품, 유리·회화 작품 79점이 전시된다. 작품들은 ‘실린더’, ‘바스켓’, ‘시폼’, ‘마끼아’, ‘이케바나’, ‘페르시안’이란 이름이 붙은 시리즈들. 고형 유리가 녹는 짧은 고온에서 성형된 탓에 너울거림과 아름다운 색상이 특징이다.
1975년 시작된 ‘실린더’는 일종의 그릇. 한해 전 미국 샌타페이의 아메리칸 인디언 아트 인스티튜트에 유리공방을 지은 게 계기가 되었으며 나바호 인디언 담요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고온에서 불어 만든 실린더를 철판 위에 궁굴리면서 그 위에 미리 만들어둔 유리섬유 문양을 붙여 올리는 기술이 핵심이다.
‘바스켓’은 1977년에 시작됐는데, 세월의 무게에 눌려 입구가 일그러진 인디언 바구니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에 앞서 치훌리는 1976년 영국 여행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해 얼굴을 256바늘이나 꿰매야 했고 왼쪽 눈을 잃어버렸다. 그는 이후 검은 안대를 쓰게 되었고 이것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불기로 만들어지는 유리 공예는 대칭이 기본인데, 그는 한쪽 눈을 잃으면서 오히려 대칭의 굴레에서 해방됐으며 196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유리공방에서 배운 동료와의 협업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1979년 몸으로만 하는 보디 서핑을 하던 중 어깨뼈가 탈골돼 직접 유리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감독이 되어 작품을 발전시켜 나갔다. 아름다운 조개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시폼’(1980), 안팎으로 다른 색깔에 겉에다 점을 박은 ‘마끼아’(1981), 연잎을 컬러풀하게 만든 듯한 ‘페르시안’(1986), 일본 꽃꽂이를 원용한 ‘이케바나’(1990) 등이 그것. 이와 함께 작업자와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시작된 드로잉이 작품이 되었다.
애초 얼음과 네온으로 설치 작업을 시작한 그답게 대형 작품으로 유명하다. 1995년 베네치아 운하 곳곳에 작품을 설치한 적이 있으며 이스라엘 예루살렘 역사박물관(1999),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박물관(2001), 미국 시카고 가필드공원(2001), 런던 큐 왕립식물원(2005) 등에서 전시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드영박물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 값이 무척 비싸 웬만한 보석과 맞먹는다. 10월15일까지. (02)726-4428.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은 일본 꽃꽂이를 원용한 ‘이케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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