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작 <결혼>(52.5×57.5㎝). 사라 문의 작품은 일단 예쁘고 아름다운 컬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뒤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활짝 웃고 있는 이 여인은 회전목마를 타며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신랑의 품에 안긴 신부의 모습. 행복이 묻어나는 이 사진을, 사라 문도 회전목마를 타며 촬영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자발적인 에너지로 넘치는 사진이다.
사라 문. 그 이름부터가 여운이 긴, 어떤 매혹적인 호흡이 느껴지는 이름. 사진보다 먼저 만나본 사라 문은 겨울나무 같은 메마른 몸매에 태초의 기원이 담겨 있는 듯했다. 아련한 눈빛, 성긴 머리스타일과 두꺼운 안경테에서는 선병질적이며 식물적이라는 선입견이 느껴진다. 저 여인이 모델 출신이라니! 평소 알던 모델과는 사뭇 다른, 그러니까 육체의 미감이 먼저 풍기는 여인이 아닌, 내밀한 공력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그 어떤 단단함이 전해져 왔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흰 장식 천들이 머리 위에서 펄럭이며 환상의 세계로의 이끌림을 예견케 한다. 샤넬, 잇세이 미야케, 장폴 고티에. 유명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이 적힌 사진들. 아, 그런데 도무지 그 명품 의상은 어디에 있는가? 모델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모델이 옷을 입고 있는데 의상도 패션도 없다. 컬러를 입혔는데도 흑백이 느껴지고, 파리가 배경인지 몰랐지만 파리가 보인다. 분명 패션사진전을 보고 있는데 드라마를, 소설을,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물고기 닮은 모델의 등허리는 느닷없이 내 아픈 심장을 누르는 듯 조여오고, 공원에 멈춰 서 있는 여자아이는 외로웠던 저 아득한 유년 시절로 나를 실어다 놓는다. 눈 오기 전 11월의 공기 같은,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기차에서 보았던 청회색 하늘 같은 기억의 톤으로 사진은 이어진다.
혼돈의 어찔함에 서성이며 사라 문이 던져 준 의미망에 갇혀버린 나. 보이는 것을 넘어선 의미,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인상! 사진전을 뒤로하고 나오는 내 몸 안엔 이미 어떤 해체된 감각이 이루어놓은 벽 너머의 몽상이 조용히 싹트고 있음을 감지했다.
▶사라 문의 한국특별전은 11월2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브이갤러리에서 열립니다. (02)710-0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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