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극 ‘마라, 사드’
새 연극 ‘마라, 사드’
세계화의 시대에도 혁명은 여전히 유효한가?
극단 풍경의 연극 <마라, 사드>(10월8~1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던지는 질문이다. 여성 연출가 박정희(51)씨는 의뭉스럽게 그 대답을 관객의 몫으로 돌렸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화가, 영화감독, 소설가 페터 바이스(1916~1982)가 쓴 이 작품은 프랑스혁명을 이끌었던 과격 근본주의 혁명가 장 폴 마라(1743~1793)와 한때 혁명 동지였으나 혁명의 폭력성과 변질에 실망하고 극단적인 탐미주의자로 돌아선 사디즘의 창시자 마르키 드 사드(1740~1814) 후작의 대결을 그린 정치연극이다. <사드씨의 지도하에 샤랑통 병원의 연극반이 공연한 장 폴 박해와 암살>라는 원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드 후작은 1801~1814년까지 샤랑통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그곳 정신병원 환자들과 연극을 공연했다. 페터 바이스는 그 사실과 함께 1793년 혁명가 장 폴 마라가 혁명의 온건파이자 지방 귀족 출신인 아름다운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을 당한 역사적 사건을 의도적으로 교잡한 뒤 극중 극의 형식을 빌려서 마라와 사드 간에 가상의 혁명논쟁을 붙인다. 물론 논쟁의 빌미를 꺼집어낸 것은 극중 대본작가이자 연출가인 사드이다.
“난 당신이 배반한 혁명을 믿을 뿐이요. 혁명은 계속돼야 해. 우리 위에 군림하던 돼지 같은 놈들을 제거하고 몰아냈지만, 그놈들의 자리를 차지한 혁명 동지들은 과거의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어. 이제 모든 건 명백해졌어. 혁명에서 득을 본 사람은 부르주아들뿐이고 민중들은 여전히 고통만 당할 뿐이야”(마라)
“저렇게 떼를 지어 소란을 피우는 민중을 난 경멸한다. 난 모든 선한 의도를 경멸한다. 그런 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사라질 뿐이다. 난 모든 희생을 경멸한다. 난 나 자신을 믿을 뿐이다.”(사드)
극의 시간은 프랑스 혁명이 끝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즉위한 지 4년 뒤인 1808년이지만 극의 내용은 장 폴 마라가 샤를로트 코르데에 의해 암살된 1793년이다. 여기에다 극이 공연되는 현재 2009년까지 세 가지 시간의 층이 공존한다. 이 작품은 아르토의 ‘잔혹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절충해 프랑스 혁명을 박진감 넘치는 연극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극은 비록 프랑스 혁명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극을 관통하지만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된 알코올중독자, 성도착증환자, 매매춘 남성, 행려인, 거지 등 사회 밑바닥 인생들이 이끌어가는 연극놀이인 만큼 광기 어린 축제 분위기이다. 또한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가 불쑥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너무 무겁고 성가시죠?”라는 질문을 던져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서울시극단(단장 김석만)에서 인기연출가 박근형씨의 연출로 국내 초연돼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는 인간의 부조리와 사회적 모순을 섬세한 심리묘사와 힘있는 움직임 연극으로 파헤쳐온 여성 연출가 박정희씨가 도전했다. 그는 경쾌한 안무와 힘찬 노래, 때로는 몽환적인 음률을 입힌 서사적 음악극으로 꾸며 ‘혁명의 축제성’을 견지하려고 했다. 물론 남명렬, 홍원기씨 등 중견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와 코러스로 참여한 극단 풍경 배우들의 움직임, 밴드의 연주가 뒤를 받친다.
무엇보다 박정희는 마라의 죽음으로 논쟁이 중단되는 결말을 관객의 선택에 맡기는 열린 연극으로 만들어 눈길을 끈다. 관객들이 극중 해설자의 지시에 따라 미리 나눠준 마라와 사드의 카드를 고르는대로 극의 결말이 결정된다. 마라에게 손을 들어줄 경우는 혁명의 영향이 지금까지 어떻게 끼쳤고 현재에 어떻게 끼치고 있는지를 6·8혁명과 베트남전쟁, 광주항쟁, 촛불집회 등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극중 대본을 쓴 사드의 의도대로 마라의 죽음과 함께 환자들의 난동, 경호원들의 폭력적인 진압, 사드의 승리의 미소로 막을 내린다.
<마라, 사드>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끌어들였지만 “사회에 반응하는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오늘을 겨냥하고 있다. 극의 결말에서 마라의 혁명동지인 루 신부는 환자와 관객들에게 외친다. “너희가 바르게 보는 법을 언제 배우겠느냐. 너희가 언제쯤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은 작가 페터 바이스가 21세기에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이제 ‘너희가’ 대답할 차례다. (02)741-358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풍경 제공
새 연극 ‘마라,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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