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남한산성’
[리뷰] 뮤지컬 ‘남한산성’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대형 뮤지컬은 어려운 작업이다. 어느 한둘이 잘하거나 못해서 판가름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은 무대 위의 종합예술이라 불린다. 수많은 톱니바퀴가 제대로 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감동은 완성된다. 물론 아구가 맞지 않으면 엉클어지기 십상이다.
뮤지컬 <남한산성>(10월9일~11월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은 모처럼 만난 대극장용 창작 뮤지컬이다. 김훈의 장편소설을 극화한다는 시도부터 참신했거니와, 지역의 예술단체가 유통의 하부구조 역할을 넘어 의욕적으로 제작에 임했다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야 없겠지만 분명 바람직한 시도이고, 앞으로 귀추가 주목되는 변화다.
뮤지컬은 드라마나 영화로 익숙한 수치스런 수난사-병자호란과 인조의 남한산성 파천을 소재로 한다. 아픈 역사와 묵직한 이야기가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어울리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겠지만, 남의 역사와 이야기가 판을 치는 요즘 우리 공연가에서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분명 평가될 만한 시도다. 극적 완성도를 떠나 발상 자체가 반갑다.
기대가 크면 아쉬운 부분도 많아진다. <남한산성>에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어중간한 절충이라는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사극을 보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엔 대중음악 콘서트로 변한다. 좋게 말하면 변화무쌍하고, 나쁘게 보자면 줏대가 없다. 현대적인 해석이나 고증에 대한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해체해 재구성하는 시도는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다. 현대적인 의상과 잔뜩 멋을 부린 무대는 그래서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관건은 이런 해석과 변화들이 얼마나 새로운 시각과 논리적인 극적 전개로 무리 없이 결합됐는가의 여부다. 아쉽게도 많은 장면이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들의 나열이다. 대중적인 선율도 친숙하고 낯익지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양새가 ‘잽’ 없이 ‘훅’만 날리다 제풀에 지쳐 버리는 인상이다. 3시간짜리 대작이지만, 음악적 리듬은 4분 남짓의 대중가요 공식을 수십 번 반복 재연하는데 그치고 만다.
원작자도 언급했듯이, 소설에서 ‘한 부분’으로 머물던 오달제를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설정한 파격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무대는 이밖에도 많은 요인의 복합적 결과물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과 함께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게 하려 했다면 더 충실히 캐릭터의 정서를 구축하는 과정이 따라야 했다. 이미지는 난무하지만 ‘분노’와 ‘절망’이라는 정서의 공감은 쉽사리 공유하기 힘들다.
창작 뮤지컬이 단순히 한국 뮤지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이라는 단어에는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극의 소재뿐 아니라 그것을 형상화해내는 방식과 절차, 형태와 구조적 측면에서도 창의성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화두다. 명작이란 이 과정을 통해 빚어지는 필연적 산물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원종원/순천향대 교수 jwon@sch.ac.kr
뮤지컬 ‘남한산성’
원종원/순천향대 교수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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