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1982년)
[세상을 바꾼 노래 97]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1982년)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그의 삶만큼 논쟁거리다. 그럼에도 어떤 긍정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이제 비로소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잭슨을 향해 미디어가 보여준 조소 어린 태도는, 연예계의 냉정한 생리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친 것이었다. 인격체로 크기도 전에 스타로 키워졌고, 인생을 알기도 전에 무대를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의 뒤틀린 삶에 대한 공감은 그만두더라도, ‘팝의 황제’로 사랑받았던 예술가에 대해 일말의 존중도 보이지 않았던 잔인함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니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랑받는 자가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했다. “인간이라는 이해타산적 족속에게 사랑은 손쉽게 팽개쳐버릴 수도 있는 가치지만,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는 그의 통찰은, 유폐된 황제로서 잭슨의 말년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다.
그런 점에서 <타임>의 비평가 조시 타이런기엘의 관점은 모범이 될 만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 작품들을 꼽으며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얼마나 훌륭하냐고? 지금 당장 앨범을 (플레이어에) 올려놓으면 알 수 있다. (잭슨의) 20세기 말 가장 기괴한 대중적 이미지가 얼마나 쉽게 사라져 없어지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잭슨에 대한 피상적 관념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음악적 위업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뮤지션이자 엔터테이너로서 마이클 잭슨의 위대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스릴러>만으로도 족하다. 단일 앨범으로 역사상 유일하게 판매량 1억장을 돌파했고, 7곡을 히트 차트 톱텐에 올려놓았으며, 8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쓸어 모은 이 작품은 잭슨 이력의 정점일 뿐만 아니라 팝 음악 역사의 고원이기도 하다. 예술적인 혁신은 말할 것도 없다. 비평가 게리 멀홀랜드의 말마따나 이 앨범은 “그 이전 30년 동안 미국 팝의 근간을 이루었던 ‘흑인=솔/백인=록’의 등식을 영원히 바꿔”놓음으로써 대중음악사를 새로 썼다. 그러므로 <스릴러>의 성공을 촉발한 기폭제로서 ‘빌리 진’의 가치는 그 자체로 심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앨범의 가장 독보적인 트랙으로서 ‘빌리 진’의 아이콘적 위상은 전방위의 자취를 남겼다. 미니멀하게 축소시킨 다양한 사운드 요소들의 중첩을 통해 아르앤비의 미래를 연 파격은 말할 것도 없고, 흑인 뮤지션의 곡으로는 최초로 엠티브이의 집중 방송을 끌어낸 비디오의 파괴력 또한 거대했다. 문워크를 처음 선보인 1983년 3월 25일의 ‘모타운 레이블 창립 25주년 기념 콘서트’는 티브이로 방영되어 5000만명의 시청자를 사로잡기도 했는데, 비평가 앤서니 디커티스는 “그날 이후, 더 낫게든 혹은 더 나쁘게든, 모든 것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고 평했을 정도다.
잭슨의 죽음 이후 ‘빌리 진’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광적인 여성 팬의 스토킹에서 가져온 노래의 소재가 스타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상징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모든 이를 즐겁게 했으나 스스로는 결코 즐겁지 못했던 잭슨의 인생이 거기 투영되어 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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