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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50년 매달린 돋을새김 작가는 ‘나무’를 닮고…

등록 2009-10-27 21:08

목판화가 김상구
목판화가 김상구
목판화가 김상구 회고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의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와 갤러리 한길에 가면 50여년 오로지 나무판을 깎다가 종래는 나무가 돼버린 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동갑내기 민중판화가 오윤과 쌍벽을 이루며 한국 목판화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온 판화가 김상구씨의 회고전이 그것.

그가 소재로 삼아온 바이올린, 벤치, 새, 배, 물고기, 꽃, 목마, 솟대, 해, 달, 사람, 나무, 바다, 하늘 등은 50년 우려먹기에는 너무나 진부한 소재들. 하지만 그것들은 먹으로써 선과 형태를 얻은 것이 전원적인 자연스러움과 도회적인 세련미를 동시에 얻고 있다. 예컨대, 물고기는 물을 차는 유선형, 나무는 둥치와 줄기로 된 덩어리, 목마는 움직이지 않는 고적함, 새는 창공을 나는 자유, 오리는 고요와 사색의 기호로 변환돼 있다.

소재도 재료도 줄곧 나무와 씨름
우직한 변주로 얻어낸 칼맛 선봬


김상구의 목판화들. 작품번호 557.
김상구의 목판화들. 작품번호 557.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스케치한 것이 아니라 그의 기억에서 길어 올렸기 때문. 월급쟁이처럼 정시 출퇴근 시스템 속에서 틈틈이 메운 스케치북이 100권을 넘는다. 작가는 은행에 저금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또 수십 년 반복하면서 선과 형태로 최소화하여 구체적인 기능과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동세와 방향으로 변환된 그것들은 그의 손을 거치면서 칼맛을 얻어 김상구 표 실루엣이 되었던 것이다.

불국사, 해인사, 하회마을 등 예외가 없지 않지만 작가의 시선이 머문 것은 어디까지나 자연 풍광. 빼고 덜어낸 최소한의 형상을 구불구불한 음각의 곡선으로 내보이려니 방법이 없다. 가장 즐겨 작품화하기로는 단연 나무다.

기둥줄기로 단순함의 기초를 삼고, 줄기로써 변화를 삼기에 그만한 소재가 없더라고 했다. 둥치는 예와 진배없지만 줄기 부분은 휘늘어진 양각 세버들로, 몇 줄기 음각선으로, 몽글몽글 동그라미로, 우직한 사각으로 변주를 거듭한다.



작품번호 286.
작품번호 286.
나무 옆에 호리호리한 몸매로 종종 등장하는 사람 형상은 필경 작가 자신이다. 한자 쉴 휴(休)의 모양을 닮은 그것은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고는 하나 쓸쓸하게 변해버린 판화계에서 나무처럼 수척해진 작가랄 수밖에. 나무와의 씨름 50년에 그는 프레스와 한지 사이에 들어가 도형이 되었다. 1960년 고교생 때 전국실기대회 입상작을 1번으로 쳐서 이제 그 번호가 1000번을 헤아릴 지경이니 그럴 법하다.

서울 수송동 조계사 뒤쪽 한옥에서 난 해방둥이인 김씨는 초등학교 때 동무들이 줄을 서서 지우개에 무늬를 새겨달라고 맡겨올 정도로 새기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고교 때 미술교사와 미술반 학생으로 만난 판화가 이상욱과의 인연은 대학 서양화과에 진학해서도 강사와 조교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서 강환석, 류강렬, 윤명로씨 등 판화가 선배와의 교류. 판화를 배운 것은 판화계의 척박함과 홀로 마주해야 했던 고독이었다고나 할까. 1990년 서울 금호동 대경중학교를 끝으로 20년에 걸친 미술교사를 그만두고 지금껏 나무판을 새겨왔다.


작품번호 606.
작품번호 606.
그동안 그는 문예출판사 도서의 표지 장정, 각종 연극 포스터, 김삿갓 소주 상표, 시계, 방석 등 생활 공예품, 아트북 등 목판화를 활용한 부가가치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1995년에는 서울판화미술제를 창설해 어린이판화교실을 여는 등 판화대중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개인전 22회. 운반이 쉬워 전시회를 열기 여반장이라고 하나 자비를 들여 지방 주요 도시를 돌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늘그막에 쌓인 연륜에 맞먹는 위상이면 더할 나위 없을지나 희망사항일 뿐. 전성기 최대 50장까지 찍던 에디션은 10장 남짓으로 줄었다.

딸아이의 통학 편의를 위해 서울 삼선교 집을 팔고 돈을 빌려 여의도에 34평 집을 사둔 것이 유일한 삶의 거멀못이 되었을 정도로 신산한 요즘이다.

유일한 판화전문 화랑인 경기도 벽제의 김내현 화랑에서 수장공간을 내어 작품을 보관해 주니 그나마 위안 삼는다.

요즘도 아침 9시에 여의도백화점 작업실에 출근한다는 그는 한 달 전부터 전통 능화판(책 겉장 무늬를 찍는 전통 목판)의 패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엉겅퀴 문양으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17일 시작된 ‘자연에서 나무를 닮아가다’ 전시는 11월22일까지 열린다. (031)955-2094.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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