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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데뷔 앨범 내는데 50년 걸렸소”

등록 2009-10-28 13:51수정 2009-10-28 14:14

심성락씨
심성락씨
청와대 악사로, 최고가수들 반주자로
드라마 같은 음악인생 결정판 선보여




‘아코디언의 전설’ 심성락씨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흔히 “내 얘기를 글로 쓰면 소설로 몇 권이 나온다”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74)씨의 음악 인생이 바로 그랬다.

국내 어떤 음악에서 아코디언 연주가 나올 때, 그 음반의 속지를 보면 거기에는 대부분 심성락이란 이름이 적혀있을 것이다. ‘대부분’이란 말을 ‘열에 여덟아홉’으로 바꾼대도 큰 무리는 없다. 최희준, 나훈아부터 신승훈, 장윤정까지, 심씨는 당대 최고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독보적인’ 아코디언 연주자다.

그는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귀국해 부산에서 자랐다. 경남고 재학 시절 부산의 한 악기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코디언을 만난 게 첫 시작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풍금을 혼자서 쳤거든요. 아코디언도 처음에는 주인 몰래 연주해보고 그러면서 혼자 배웠죠. 남들보다 귀가 예민했던 편이에요.”

그 뒤 논산 제2훈련소 군 예대 악장과 각 방송국 악단의 멤버를 거쳐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코디언과 전자 오르간 경음악 연주곡 앨범을 발표하고, 수많은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아코디언은 심성락’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 사고로 한 마디를 잃은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난청이라는 장애도 그 공식을 깨지는 못했다.

“악보에 ‘필’(Feel)이 적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당시 나온 가요하고 재즈를 거의 다 들었는데 그 음악들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필’을 내니까 그게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노래하듯이 연주를 하니까 그게 새로웠던 거죠. 그러다 보니 녹음할 일 있으면 나만 부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독보적인 존재였던 만큼 정치권에서도 찾았다. 서울 궁정동과 삼청동 총리공관을 오가면서 오르간 사용법을 가르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 연주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노태우 정부 때까지 청와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악사로 활동했다.

“난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딱 내 할 일만 하고 왔어요. 그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음악 장관 할 것도 아니고 연주에만 신경 쓰는 거죠. 거기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그때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인 줄 몰랐어요. 그냥 일본 재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총리였고, 헨리 키신저도 뒤에야 알았어요.”(웃음)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던 심씨는 최근 음악 인생 50년 만에 공식 데뷔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했다. <봄날은 간다>, <달콤한 인생> 같은 영화·드라마 삽입곡들과 함께 새 창작곡들을 함께 수록했다. 심씨의 표현대로 ‘하이클래스’한 곡들이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비장하게 연주되고 있다.

세계적인 아코디언 연주자 리샤르 갈리아노도 참여해 2곡을 함께 연주해주었다. 서로가 가장 자신 있는 곡으로 피아소야의 ‘리베르탱고’와 이봉조의 ‘꽃밭에서’를 골라 같이 연주했다. “리샤르 갈리아노 그 양반 때문에 난 아코디언 하고 싶은 생각이 다 사라졌어”라고 겸손을 보였지만, 두 대가는 그 곡들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담아 일합을 겨룬다.

앞으로의 계획도 여러 가지가 잡혀 있다. 그의 염원인 훌륭한 ‘가요 연주 앨범’을 젊은 기획자들과 준비하고 있고, 앨범과 더불어 공개하려고 했던 다큐멘터리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일흔네 살의 노객에게 여전히 음악적인 꿈이 있는지를 묻자 “이제 다 죽을 나이에 그런 게 어디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곤 바로 말을 덧붙였다. “병원에서 죽고 싶진 않아요. 내 바람은 녹음실에서, 또는 무대에서 연주하다가 쓰러져서 나도 모르게 가는 거예요.”

김학선 객원기자 studiocarrot@naver.com

사진 트라이앵글 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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