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 ‘반호프’ 연출가 백남영
말 없는 가면극 ‘반호프’ 연출가 백남영
배우 4명이 37가지 얼굴로
“연극에 대한 원초적 접근법” 대학로 연극판에 ‘넌버벌 마스크 연극’이라는 독특한 연극 양식이 등장했다. 지난달 23일부터 대학로 씨어터 디아더 무대에 오른 창작극단 거기가면의 <반호프>. 조폭, 승무원, 소매치기, 노인, 군인, 말괄량이 아가씨 등 37개의 마스크를 쓴 배우들이 1시간30분간 소극장 무대와 객석을 누비고 돌아다니며 연기를 펼친다. 독일어로 ‘기차역’을 뜻하는 이 연극은 기차역 대합실을 배경으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다. “마스크에 그 인물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관객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또 4명의 배우가 순식간에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해요.” 넌버벌 마스크 연극을 국내에 첫선을 보인 백남영(41·중앙대 연극학과 조교수) 연출가는 “마스크가 표정이 하나인데도 때로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해서 관객들이 그 인물을 즐길 여유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대를 졸업하고 독일의 폴크방국립예술대학교 신체연극과에서 페터 지퍼트 교수로부터 10년간 신체연극과 넌버벌 연극을 배웠다. 2007년 귀국한 후 대구 계명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지난해 대구시립극단과 함께 국내 최초로 넌버벌 마스크 연극 <공씨의 헤어 살롱>을 선보였다. 이듬해는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해 <가디언>지로부터 “재미있고 유쾌한 연극”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그는 “독일에서 처음 극단 파밀리에 풀르츠의 마스크 연극 <테아터 델 루지오>와 <레스토란드 레스토란데>를 보고 연극에 언어가 없어도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마스크 연극이 오히려 배우들이 원초적이고 원시적으로 연극에 접근하는 방법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어느 기차역을 배경으로 개구장이 할아버지 동수가 청소부 아주머니 소라에게 받히는 프러포즈 과정, 역내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하는 청년 석호와 노처녀 검표원 미숙의 티격태격 연애기, 애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표를 끊지만 끝내 기차를 타지 못하는 명태의 사연이 주된 줄거리이다. 여기에 군인들, 승무원, 소매치기, 조폭, 샐러리맨, 외국인, 바람둥이 남녀 등의 10가지 에피소드가 곁들어지면서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군상의 만남과 헤어짐이 빠르게 교차한다. 무엇보다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4명의 배우가 37명의 인물로 마술처럼 변신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다. ‘넌버벌’을 내세운 만큼 대사가 없지만 유일하게 개가 짖는 대신 사람처럼 ‘개소리’를 낸다. 공연을 앞두고 구기환, 최요한, 하준호, 송영훈 등 네 배우가 넉달 동안 마임 연기를 익혔다. 백 연출가는 “마스크의 눈이 작고 시선이 좁아서 다른 배우들이 옆에서 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발을 구르거나 손짓으로 호흡을 맞춰야 한다”며 “대사가 없다 보니 기존 연극보다 잔 동작을 잘게 썰어서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공연에 쓰이는 마스크 제작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홍익대 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와 함께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유학한 부인 이수은(40·중앙대 강사)씨가 재활용 종이를 써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60여개를 만들었지만 20여개는 캐릭터에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백 연출가는 “마스크 연극은 언어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외국에서도 쉽게 공연할 수 있다”며 “우리 팀이 추구하는 연극성이나 공연성을 살릴 수만 있다면 다른 오브제를 이용한 새로운 연극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15일까지. (02)764-7462. 글 정상영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vai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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