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개막하는 창작발레 <왕자 호동> 공연을 앞두고 21년 전 초연 당시 남녀 주역이던 문병남, 최태지(왼쪽 끝과 오른쪽 끝)씨가 이번 공연의 남녀 주역 이영철, 박세은 짝(문씨와 최씨 사이)의 춤 동작을 잡아주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1년 전 공연영상서 정열을 봤어요”
“갈비뼈 부러지며 자명고 찢었는걸”
“갈비뼈 부러지며 자명고 찢었는걸”
1988년 8월21일 밤 서울 남산 국립극장 대극장은 국내외 관객들의 함성과 갈채로 뜨거웠다. 무대 위에서는 고구려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슬픈 사랑이 남녀 무용수의 아름다운 파드되(2인무)로 펼쳐졌다.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공식행사인 서울국제무용제의 개막 첫 작품으로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왕자 호동>이 무대에 올랐다. 그 주인공은 당시 29살의 프리마돈나 최태지와 27살의 수석 발레리노 문병남. 사랑에 빠진 낙랑 공주가 호동 왕자의 밀지를 받고 자명고를 찢는 2막이 되자 최태지의 입에서 가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단금을 뽑아들자 부러진 오른쪽 갈비뼈에서 극심한 통증이 머리끝을 타고 왔던 것. 두 무용수의 소곤거리는 대화가 급박하게 오갔다.
“태지씨! 아프겠지만 조금만 힘내. 이제 마지막이야” “걱정 마, 할 수 있을 것 같아.”
낙랑 공주가 아버지 최리왕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호동 왕자도 낙랑의 품에 자결하면서 막이 내렸다. 분장실로 돌아온 두 사람의 몸은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안무가 임성남 국립발레단 초대 예술감독이 분장실로 찾아와 “고생했어”라며 두 사람의 어깨를 툭 쳤을 때 최태지의 눈에는 물기가 번졌다.
“공연하기 2주일 전에 연습하면서 넘어져 오른쪽 갈비뼈 2대가 부러졌어요. 단순히 타박상인 줄 알았는데 점점 통증이 심해지더니 공연 당일 아침에는 옷을 못 입을 정도로 아팠어요. 공연이 끝나고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야 갈비뼈가 부러진 것을 알았어요.”
예술감독·안무 맡은 최태지·문병남
신예 박세은·이영철 짝과 함께 ‘호흡’ 현재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인 최태지(50)씨는 “자명고를 찢을 수가 없을 만큼 아팠지만 문 선생이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줘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발레단 부예술감독인 문병남(48)씨도 “최 단장이 워낙 의지가 강해서 4회나 공연을 할 수 있었다”면서 “낙랑이 죽고 나서 호동이 안고 내려올 때 되도록 아픈 부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보리스 에이프만의 <레퀴엠>을 비롯해 <피가로의 결혼>, <백조의 호수>, <고려 애가>, <돈키호테>, <호두까기 인형> 등 국립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에서 10여년간 단짝으로 발레무대를 누볐다.
21년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오는 18~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왕자 호동>에서 안무가와 예술감독으로 다시 호흡을 맞춘다. 특히 문병남씨는 고 임성남(1929~2002)에 이어 안무를 맡아 2막 12장의 드라마 발레로 꾸민다. 새로 부활한 <왕자 호동>의 주인공인 호동과 낙랑 역으로는 국립발레단을 대표하는 스타커플인 김주원-김현웅, 김지영-이동훈, 박세은-이영철 짝이 세 가지 빛깔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 김주원(31), 김지영(31)씨와 나란히 프리마돈나로 캐스팅된 신예 박세은(20)씨와 그의 짝인 이영철(31)씨의 연기가 관심을 모은다.
박세은씨는 2007년 로잔콩쿠르 우승 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2에서 활동하다가 올 초 입단했으며 이번이 전막 발레 데뷔무대. 한국발레협회의 당쉬르 노브르상을 수상한 기대주 이씨도 <왕자 호동>은 첫 만남이다.
“며칠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우연히 최 단장님과 문 선생님이 하신 <왕자 호동>을 발견했어요. 굉장히 느낌이 새롭더라구요. 지금이 예전 것보다 좀 더 세련되거나 구성이 더 나을 수 있지만 굉장히 힘 있고 정열적인 무대였어요.”
이영철씨는 “공연에서 왕자 호동과 필대대장의 두 가지 역할을 맡아 부담스럽지만 두 역할을 확실하게 색깔을 다르게 해서 관객들에게 저의 숨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세은씨도 “개인적으로 한국적인 음악에 맞춰서 한국 사람을 표현하는 한국발레를 좋아한다”면서 “평생 가슴에 남을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발레인 만큼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무대 위의 무용수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왕자 호동>은 총 12장에서 다양한 춤 형식을 볼 수 있다. 특히 28명의 남성무용수가 한 무대에서 남성미의 에너지를 뿜어대는 1장, 호동과 낙랑의 아다지오가 선보이는 6장, 각 부족들의 다양한 축하무가 등장하는 7장의 결혼피로연 등이 안무가 문병남씨가 추천하는 주요 장면들이다.
스태프들도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겨냥한 작품답게 국내외 정상급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과 2002년 월드컵 개막식의 안무를 꾸민 국수호(61·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씨가 총연출을 맡았고, 지난 20여 년간 약 62편의 예술작업을 해온 신선희(64) 전 국립극장장이 무대디자인을 꾸민다. 국립무용단의 <그 새벽의 땅>, 서울예술단 뮤지컬 <바리> 등의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조석연씨가 쓴 곡을 박태영씨가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100여명에 이르는 출연인원과 170여벌에 이르는 의상,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서 봄 직한 스펙터클한 무대장치 등이 볼거리를 준다.
최 예술감독은 “세계무대에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 창작발레를 내놓는 작업은 한국 발레인들에게는 시대적인 소명”이라고 밝혔다. 문 부예술감독도 “<왕자 호동>은 외국 사람들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꾸준히 수정과 보완해서 3~4년내 세계무대에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02)587-6181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신예 박세은·이영철 짝과 함께 ‘호흡’ 현재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인 최태지(50)씨는 “자명고를 찢을 수가 없을 만큼 아팠지만 문 선생이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줘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발레단 부예술감독인 문병남(48)씨도 “최 단장이 워낙 의지가 강해서 4회나 공연을 할 수 있었다”면서 “낙랑이 죽고 나서 호동이 안고 내려올 때 되도록 아픈 부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보리스 에이프만의 <레퀴엠>을 비롯해 <피가로의 결혼>, <백조의 호수>, <고려 애가>, <돈키호테>, <호두까기 인형> 등 국립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에서 10여년간 단짝으로 발레무대를 누볐다.
21년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오는 18~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왕자 호동>에서 안무가와 예술감독으로 다시 호흡을 맞춘다. 특히 문병남씨는 고 임성남(1929~2002)에 이어 안무를 맡아 2막 12장의 드라마 발레로 꾸민다. 새로 부활한 <왕자 호동>의 주인공인 호동과 낙랑 역으로는 국립발레단을 대표하는 스타커플인 김주원-김현웅, 김지영-이동훈, 박세은-이영철 짝이 세 가지 빛깔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 김주원(31), 김지영(31)씨와 나란히 프리마돈나로 캐스팅된 신예 박세은(20)씨와 그의 짝인 이영철(31)씨의 연기가 관심을 모은다.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에서 뭉친 새 주역-옛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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