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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사라문] 잠든 혼이 살아나 흐느끼는 힘 / 신현림

등록 2009-11-09 18:58수정 2009-11-10 15:42

신현림 작가
신현림 작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 프랑스 패션사진 거장 사라 문의 특별전(한겨레신문사 주최/ 2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브이갤러리)이 관객들의 열띤 호응 속에 중반부를 넘어섰다.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씨가 보내온 감상기를 싣는다.

사라 문의 사진전을 가슴에 안고 와서일까. 오늘은 진정 잘 살았다는 기쁨, 뭔가 얻었다는 즐거움 속에 나는 흥얼거렸다. 요즘처럼 흔하디흔한 사진들, 누구나 사진 찍고 누가 찍었는지 모를 비슷비슷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시대에 모처럼 만에 사진다운 사진, 최고급 사진의 진수를 봤다는 감동. 이 느낌은 다음날인 지금껏 강렬하고, 애잔하게 가슴을 흔든다.

사라 문(1940~)은 행복한 유년기 이후 19세부터 모델로 활동해 성공했다. 그것을 뒤로한 채 우연히 다른 모델들을 찍은 경험이 그를 오늘의 패션사진의 거장으로 이끌었다. 당대에 남성 패션사진 작가가 주류였던 시대에 그의 작업은 독보적이었고, 시대를 넘어 한번 작품을 본 자들은 잊지 못한다. “걸작이란 바로 모든 바람들과 모든 우연들에 열려진 작품인 것”이란 말이 그의 작품에도 해당되어서일까.

사라 문의 사진들은 혼을 부르는 이상한 힘이 있다. 잠든 혼이 다시 살아나 흐느끼게 하는 힘.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전설 같은 강력한 힘 말이다. 그의 사진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허무감 위에서 우연히 태어나고 어디로든 흘러가도 꿈을 간직한 운명의 힘을 보여준다. 그것이 우연성의 극치를 드러내 보이는 폴라로이드 작업과 끈끈히 이어져 있어 더 흥미롭다.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고 계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이미지가 나오는” 폴라로이드 운명은 사람의 운명과도 흡사하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문득 신기하게 느껴지듯 사진 속의 인물들, 옷과 새, 파도, 길과 숲 …. 꿈꾸는 듯이 신비롭게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이고, 몹시도 회화적이다.

사라져가는 무게감이 저런 것일까. 사라지기 싫다는,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운명의 무게감 속에서 예술은 바로 이거야, 라고 저마다의 사진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잃어버리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 같은 곳, 고된 생존의 현장을 뒤로한 채 사진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헤매다 나오면 잃어버린 감성, 새로운 감각을 되찾아 명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듯이 사라 문의 사진들은 기묘하게도 기분이 좋다.

저물어가는 이 가을날 누구에게도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몹시 쓸쓸하고 온화한 날. 사라 문의 사진에 젖다보면 위로가 된다. 안심하고 마음속을 드러내도 춥지 않고, 마구 헤매고 나와도 내 길이 융단처럼 포근히 앞에 준비돼 있을 듯한 기분. 매혹적인 영화 <서커스>까지 이런 감동이 힘겹던 삶을 지속하게 한다.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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