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연씨의 작품 <사막에 가자>.
민정연씨 개인전 ‘불안한 아름다움’
공간체험 위해 스카이다이빙하는 ‘4차원 작가’
어릴적 벽지문양 놀이서 착안한 심리 풍경화
공간체험 위해 스카이다이빙하는 ‘4차원 작가’
어릴적 벽지문양 놀이서 착안한 심리 풍경화
‘어떻게’와 ‘무엇을’에서 독보적이라면 당당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하는 작가 민정연(32·사진)씨는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양수, 새벽, 졸음, 기억 등 실재하지 않거나 경계가 모호한 풍경을 그린다. 그래서 민씨의 모든 그림에는 고구마 줄거리, 또는 흐물흐물한 해면체 형상이 가득하다. ‘리좀’(뿌리로 증식하는 식물의 뿌리줄기)을 닮은 그것들은 땅에서도, 벽에서도 뻗어나와 삼차원과 이차원을 넘나들며 공간을 해체한다. 거기에 작가의 일상이 하나둘씩 끼어든다.
다음달 6일까지 서울 팔판동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불안한 아름다움’도 그런 맥락이다. 굴뚝의 뭉게구름이 오염된 물과 이어지고, 흘러내리는 모래로 공장은 경계가 허물어져 있다. 200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뒤 한국에서 여는 사실상의 첫 개인전이다. 파리 국립고등예술학교 대학원 재학 때 일찌감치 스위스 갤러리에 스카우트되어 지금까지 전속되어 있으며 국외 경매시장 등에서 인지도를 높여가는 신예작가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고 할까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도 주변 풍경에서 작품의 구도와 색깔을 정해요. 제게 필요한 것만 집중하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아요.”
‘시간의 신’ 크로노스처럼 자기는 불규칙하고 즉흥적이라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정신병원에 있을 거라며 웃었다.
‘심리적 풍경화’ 이전의 작업도 ‘4차원’이기는 마찬가지. “여성의 현실이 동물보다 나은 게 도대체 뭐냐”는 자각에서 “정말 동물이 되면 어떨까”라는 발상을 했다. ‘곰이 변해서 여성이 됐다’는 단군신화를 거꾸로 돌리는 작업이었다. 거기에도 예의 고구마 줄거리가 나온다.
3살 때 선풍기를 입체적으로 그린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그림을 쉰 게 딱 1년뿐이라고 했다. 파리에 처음 가서 자기한테 그림 재주만 있지 상상력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을 때다. 결국 그가 찾아낸 공간은 어릴 적 벽 속에 숨어 있었다. 누워서 눈동자의 초점을 흐리면 벽지의 문양이 와락 튀어나오던 놀이였다.
민씨는 최근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시간과 공간이 착종되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서다. 4㎞ 상공에서 뛰어내려 낙하산 펴기 직전까지 20초 만에 2㎞를 쏟아져 내리면서 지상의 풍경이 튀어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작품에도 반영돼 후퇴하던 공간이 다가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거론하며 사막 얘기를 했다. “홈이 팬 곳에서 물은 홈을 따라 흐르죠. 사막은 구획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그가 발명해낸 심리적 풍경화는 말하자면 그만의 사막인 셈이다. (02) 738-7776.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작가 민정연(32)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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