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 커트 코베인 폭발적 100분 절창
‘너바나’ 레딩 페스티벌 실황 ‘라이브 앳…’ 출시
“위대한 로큰롤 공연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 <스쿨 오브 록>에서 로커의 신분을 숨기고 위장취업한 얼치기 임시교사 듀이 핀(잭 블랙)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너바나의 1992년 영국 레딩 페스티벌 무대가 바로 그런 공연 가운데 하나”라고 단언한다. 영국의 록 전문지 <커랭!> 2003년 10월호는 “너바나의 92년 레딩 페스티벌 무대는 꼭 봤어야만 하는, 못 봤다면 본 척이라도 해야 하는 공연”이라고 평가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공연이기에?
너바나는 90년대 초반 그런지록과 얼터너티브록을 세계적인 주류 음악으로 만들어버린 미국 록 밴드다. 이들의 91년작 <네버마인드>는 세계 대중음악사를 바꾼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 2004년 6월 특집호는 ‘로큰롤 역사를 바꾼 50장면’ 가운데 하나로 너바나의 등장을 꼽았다. 하지만 너바나는 94년 리더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 짧은 생명을 다한다. 커트 코베인의 주검 옆에는 가수 닐 영의 노랫말에서 따온 ‘서서히 꺼져가는 것보다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게 낫다’는 글이 담긴 유서가 있었다.
너바나의 92년 8월 30일 레딩 페스티벌 무대는 “너바나 경력에 있어 정점의 순간”으로 일컬어지는 공연이다. <네버마인드> 발표 1년 만에 본격적으로 유럽에 상륙한 순간이기도 하다.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 ‘컴 애즈 유 아’ 등 <네버마인드> 수록곡뿐 아니라 당시 아직 발표되지 않았던 그들의 마지막 정규앨범 <인 우테로> 수록곡까지 너바나의 대표곡 25곡을 불렀다. 커트 코베인은 ‘약물이 그를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당시 언론 보도에 시위라도 하듯,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100분간 폭발적인 울림을 쉼없이 토해냈다.
당시 모습이 17년 만에 되살아났다. <라이브 앳 레딩>이라는 제목으로 공연 실황 시디(CD)와 디브이디(DVD)가 나온 것이다. 너바나의 소중한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반이다.
때마침 너바나의 드러머 출신 데이브 그롤이 결성한 밴드 ‘푸 파이터스’의 베스트 앨범도 발매됐다. 95년 데뷔 이래 주요 히트곡 13곡과 신곡 ‘휠스’ ‘워드 포워드’가 실렸다. 너바나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낸 데이브 그롤의 성취를 저 하늘에서 커트 코베인도 축하해주는 것만 같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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