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이야기
방송 드라마 이어 뮤지컬·연극서도 ‘여풍당당’
전통과 현대의 경계 오가는 여성상의 재해석
전통과 현대의 경계 오가는 여성상의 재해석
먼저 효녀 심청. 지난 22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내린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청 이야기>에서 심청은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눈먼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는 일념 하나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이 작품에서 뜻밖의 이미지를 더했다. 인당수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왕자를 도와 궁중 쿠데타를 진압하는 투사로 그려진 것. 당차고 적극적인 현대 여성상을 반영한 것이다.
왕자 호동의 비극적 연인 낙랑공주도 무대로 올라왔다. 지난 22일 막을 내린 서양발레 <왕자호동>의 바통을 받아 24일 개막하는 전통춤극 <낙랑공주>(24~28일 서울남산국악당, 02-399-1114~6)다. 전편이 호동의 처지에서 본 낙랑의 사랑이었다면, <낙랑공주>는 낙랑의 처지에서 호동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위해 조국까지 버린 그의 헌신적 사랑을 풀어놓게 된다. 소리꾼과 무용수가 한 배역을 맡는 2인 1역 시스템이란 점이 흥미롭다. 국립창극단 단원 남상일, 박애리씨가 호동과 낙랑을 연기하고, 여기에 무용수인 송설·표상만(호동)씨, 구자은·박수정씨(낙랑)가 더블 캐스팅되어 무대에 설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은 소리극 <황진이>(26~29일 서울국립국악원 예악당, 02-580-3333)를 선보인다. 평범한 처녀로 자란 황진이가 뛰어난 예인으로 거듭나, 훗날 ‘송도삼절’ 중 하나로 일컬어지게 되는 삶의 행적을 뒤쫓는 작품. ‘청산리 벽계수야’, ‘상사몽’ 등 황진이의 시조 8편과 그의 연인이던 화담 서경덕의 ‘동지음’, ‘마음이 어린 후니’ 같은 시조 4편, 백호 임제의 시조까지 문학성 뛰어난 시가 13편이 국악기와 양악기 선율에 맞춰 울려나온다. 다채로운 춤사위도 함께 곁들여져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마지막으로 두 편의 ‘춘향’이 여풍을 이어간다. 변학도의 회유를 뿌리치고 몽룡과의 사랑을 선택한 춘향이 전통과 현대의 다른 모습으로 동시에 다가온다. 국가브랜드 공연 <미소Ⅱ, 춘향연가>(26~2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는 전통적인 춘향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자리. <한여름 밤의 꿈>, <햄릿> 등으로 서양고전의 한국화에 앞장선 양정웅 연출가가 작품을 맡아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양씨는 축원굿, 사물놀이 등의 전통예술 장르를 삽입해, 전통적 여인상을 그려낼 작정이다. 여풍의 대미는 김긍수발레단의 발레극 <라(La) 춘향>(12월 2~3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02-518-6687)이 수놓을 듯하다. 이 작품에서 춘향은 더 이상 발치까지 내려오는 한복과 버선을 고집하지 않는다. 미니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모델을 꿈꾸는 당당한 현대 여성으로 등장한다.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을 믹스한 컨템퍼러리 발레극이다.
김일송 <씬플레이빌> 편집장 ilsong@sceneclub.com
La 춘향, 미소Ⅱ, 춘향연가, 낙랑공주(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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