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로 복제한 고대 유물…눈치채셨나?
비누조각가 신미경 개인전
신미경씨는 비누로 동양의 도자기, 불상과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만든다. 그를 일러 비누조각가라 칭한다.
흡사하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가리켜 작품이라고 하면 그는 섭섭해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비누조각을 포함해 그 전후에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나 불상이나 인체상은 본디 세라믹, 금동, 대리석. 그것들은 수백, 수천년 시간을 건너 오늘에 전해지면서 유물이 된다. 신씨는 그러한 것들을 조석으로 문질러 두어 달이면 닳아 없어질 비누로 만든 것이다. 2007년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달항아리 특별전. 한국관에 있던 달항아리를 옮겨오고 그 자리에 신씨의 비누 달항아리가 대신 놓였다. 관객들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신씨는 “그렇다면 그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물었던 것이다.
신씨는 비누불상을 화장실에 두어 사람들의 손길을 타게 했다. 그리스 조각은 경기도미술관 야외에 100일 동안 두고 비바람을 맞혔다. 불상은 화장실 이용자들의 어루만짐으로 이러저리 닳았고 그리스 조각은 풍우에 남루해졌다. 수천년 세월이 100여일로 압축되고, 금동과 대리석이 비누로 대체됐을 뿐 풍화 과정은 하등 다르지 않다.
신씨는 묻는다. 그렇다면 그 결과물은 유물인가, 유물이 아닌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신미경 개인전에 가면 그동안 신씨가 물어온 물음들이 전시돼 있다.
눈여겨볼 게 하나 더 있다. 유물화 과정을 거친 4점의 그리스 조각 옆에 놓인 4점의 채색 인체상. 작가가 복원한 원조 고대 그리스 조각이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흰색’이라고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이 원래는 채색된 것이었음을 일깨운다. 비바람에 색이 벗겨진 원본이 로마에 전해지고 그것은 다시 무수히 흰색으로 카피되어 여느 한국의 화실에 ‘아그리파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런던에서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원래 기마상이 있던 런던의 캐번디시 광장의 빈 좌대에 비누로 된 기마상을 세우고 1년 동안 광장에 놓아둠으로써 유물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는 12월19일까지. (02) 735-8449.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