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엘 프로이어의 <드릴>.
시엘 플로이어 등 일맥상통 작가 4명의 작품세계
이런 게 예술일까 싶은 ‘상상’…발칙한 일상 뒤집기
이런 게 예술일까 싶은 ‘상상’…발칙한 일상 뒤집기
시엘 플로이어에게.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합니다.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 마련된 수상기념전은 그간의 전시처럼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작품은 대부분 스쳐 지나갔습니다. 미안합니다. 일상에서 감수성이 무뎌진 채로 전시장에 들어선 나는 당신 작품의 존재, 나아가 당신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우선 텅빈 공간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드릴>. 누군가 실내공사를 하다가 공구를 놓아둔 채 잠간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드릴링머신으로 콘센트 모양의 구멍을 뚫고 드릴링머신 코드를 끼워놓은 ‘작품’이더군요. 드릴링머신이지만 드릴을 뚫을 수 없는 역설. <라이트스위치> 역시 비슷했어요. 환등기와 거기서 쏘아내 벽에다 만든 스위치 이미지더군요.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놓아둔 것이 <드릴>과 흡사하고, 설사 존재를 알았다고 해도 실제 스위치에 조명을 비춘 것으로 착각할 만했습니다. 환등기를 끄려 눌러보았는데 그냥 밋밋한 벽이더군요. ‘등을 켜는 스위치’이지만 ‘빛으로 만든 스위치’이어서 실제로는 ‘먹통’이죠. 삽으로 흙을 떠내고 쏟아내는 소리를 두 개의 스피커에서 순차적으로 반복해 들려주는 <워킹타이틀(디깅)>도 그렇습니다. 넓은 바닥에 까뒤집어 놓은 스피커 두 개일 뿐. 가만히 들어보니 공간을 울리는 두 소리가 마치 두 개의 타악기가 연주하는 흥겨운 리듬잔치로 들렸습니다. 작가가 땅을 파듯 열심으로 작업하는 모양을 소리로 만들었음을 전해듣고 당신의 작품이 가진 다중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디오 작품 <춤추는 불꽃>은 유일하게 한동안 지켜본 작품입니다. 어둠 속에서 쌍으로 일렁이는 촛불을 들여다보자니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을 떠올렸습니다. 더불어 촛불의 일렁거림은 곁들여진 음악과 때로는 엇박으로, 때로는 장단맞춤으로 들렸습니다. 이미지와 소리가 만들어내는, 파장이 다른 각각의 무늬가 만나서 물결을 만들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워터컬러>는 또 어떻든가요? 붓끝의 물감이 물컵에서 풀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색깔이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비춰지면서, 텔레비전이 화면조정시간에 내보내는 전자적인 색깔을 연상케 했습니다. CMYK 색소와 RGB 색소의 공명이랄까요. 가끔 흘러나오는 유리에 부닥치는 탱탱 소리가 붓끝으로 브라운관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요.
당신은 자기작품에 대해 “오브제가 가진 기능, 즉 일상적으로 알려진 ‘그것에 관한 것들(aboutness)’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브제의 용도와 그것에 붙여진 이름에 대한 대한 통쾌한 뒤집기는 견딜 수 없는 긴장감을 불렀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쪽에서 설명하듯이, 당신의 작품은 일상의 것을 소재로 한 단순한 작품이지만, 복잡한 것을 모두 소거한 단순함이 오히려 일상의 오브제가 어떻게 예술작품이 되는가,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오랜 만에 경험하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무뎌진 마음을 벼리는 기회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흔두 살이면 일상에 익숙할 법한데 일상과 결별하는 당신의 창의성과 그럴 수 있는 감수성에 경의를 보냅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았고 현재 베를린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노마딕 코스모폴리탄이기 때문일까요?
60년대 초 ‘뭐 이런 게 예술이라고?’ 하는 곁눈질을 받으면서 대지미술, 행위예술은 물론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온 노작가 이승택 선생, 80년대초 전화-팩스의 망으로 지구촌을 24시간 에워싸는 행위예술을 펼치고, 시시티브이 도입 초창기 그 위험성을 행위로 보여준 로버트 애드리언 엑스, 전위적인 몸짓으로 예술계에 충격을 주어왔으며 지난 토요일 74대의 피아노로써 74살에 타계한 백남준을 위한 헌사를 바친 안은미씨 등 공동 수상자들의 ‘작가의 작가’적인 작품세계도 당신의 그것과 흡사해 보입니다. 다시 한번 제씨와 함께 수상한 것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전시는 내년 2월28일까지. (031)201-8571~2.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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