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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꽃 작가 이기영의 ‘색꽃’ 변신 알고보니 네살배기 딸과의 ‘동업’

등록 2009-12-08 19:14

먹꽃 작가 이기영의 ‘색꽃’ 변신 알고보니 네살배기 딸과의 ‘동업’
먹꽃 작가 이기영의 ‘색꽃’ 변신 알고보니 네살배기 딸과의 ‘동업’
이화익갤러리서 개인전
먹을 고집하던 작가가 색을 쓴다면 뭔가 사연이 있다. 그것도 먹의 농담이 아니라 자취가 남은 정도로써 형상을 추구하던 작가라면 더 그렇다. ‘먹꽃 작가’ 이기영(46)씨가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다 컬러 리본이 공중에 휘날리는 형상의 경쾌한 그림을 내걸었다. 보일듯 말듯 막대사탕도 보인다. 최근 만난 이씨는 “네 살인 둘째 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빌려왔다”고 털어놨다. 대신 아빠는 딸이 달라는 화구를 모두 빌려준다. 진지해 보이는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아이 그림이 참 재밌습니다. 무작위적인 선이 그렇고 색도 무척 발랄해요. 이번 작업은 아이와 같이한 느낌입니다. 아이가 재밌다고 해서 힘이 나요.”

출발은 벽화다. 작가는 벽화가 보여주는 세월, 즉 색이 바래고 형상이 지워진 데서 아름다움을 봤다. 그 아름다움을 화판에 재현하는 것이 작업의 요체다. 우선, 석회 반 대리석 가루 반 섞어서 갠 반죽을 베니어판에 15회 정도 얇게 펴 올려 단단한 바탕을 만든다. 그다음, 주필(대나무 붓)을 이용해 한달 정도 묵힌 폐묵(썩은 먹)으로 형상을 올린 다음, 그것이 스며들기 전에는 물로 씻어내고 마른 뒤에는 사포로 갈아낸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 남은 조각들이 이어지고 끊어지면서 꽃이 된다. 바니시로 마감하면 석회 꽃은 수차례 단층에다 지열이 가해져 변성된 대리석 무늬가 된다. “나이를 먹으면 남는 것은 관념과 이미지뿐이지요. 나는 그것을 선과 색으로 바꾼 겁니다. 그것을 어렵게 푼 게 먹이라면 컬러는 즐겁게 풀었다고나 할까요?” 컬러 작업에는 네 살 아이의 일상 외에 즐거웠던 자신의 기억이 덧대어 있다. 다름 아닌 폴라로이드 사진기. 노출이 조정되는 구형이어서 구체물을 색면으로 단순화할 수 있었다. 할로겐, 형광등 아래서의 색 변화가 매력적이었다.

10년 이상의 먹고집을 꺾은 게 딸 재롱뿐일까? 작년 8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위독한 고비를 넘겨 몸은 좀 나아졌지만 언어를 잃어 말도 못하고 신문도 못 읽는다. 산다는 게 뭘까, 안다는 게 뭘까. 병상 옆에서의 깊은 고민 과정에서 작가는 “먹을 놨다”고 했다.

다시 딸 이야기. “모티브뿐 아니라 드로잉도 빌려올 참입니다. 11살까지만 딸과 동업할 생각이에요. 그때쯤이면 영감이 사라지거든요.” 좋은 아빠지만 참 나쁜 작가아빠다. 전시는 22일까지. (02)730-7817~8.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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