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현경.
연극 ‘베니스의 상인’ 열연 오현경
유대인 차별역사 반영 원작 재해석
“죽기 전에 좋은 작품 남기고 싶어요”
유대인 차별역사 반영 원작 재해석
“죽기 전에 좋은 작품 남기고 싶어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게토. 이 단어의 어원은 150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을 격리했던 거주 지역을 일컬어 게토라 했는데, 유대인 차별은 그 뒤로 더욱 심해져 16세기 말엽 로마 교황청은 유대인들에게 거주의 자유도, 직업의 자유도 제한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베니스의 상인>은 바로 그 16세기 말 베네치아를 무대로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을 사농공상으로 분류했는데, 그중에서 상인은 가장 천하다는 의미로 ‘치’를 붙여 ‘장사치’라고 했잖아요. 베니스에서 유대인은 가장 학대받는 민족이었어요. 심지어 개 취급까지 받았는데, 그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 고리대금업이었어요.”
지금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베니스의 상인>(내년 1월3일까지)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 출연중인 배우 오현경씨. 원작에서 샤일록은 비열한 수전노이자,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의 살점 1파운드를 베어내려는 잔인한 악당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샤일록은 비열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썼던 엘리자베스 시대는 기독교인들에게 밉보이면 연극을 하기 힘들었던 때예요. 하지만 지금 그렇게 공연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번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을 제국주의 압박에 박해받는 외로운 민족의 전형으로 그리는 작품입니다.”
오씨가 연기하는 샤일록은 동정심을 일으킨다. 현실적이나 딸에게서도 버림받는 외로운 인물이다. 오히려 안토니오(정호빈)가 술로 인생을 소모하며 유대인을 차별하는 귀족으로 그려지며, 밧사니오(한명구)가 여성을 유혹하는 말재간밖에 없는 몰락 귀족으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작품의 결말까지 완전히 뒤바꾼 것은 아니다. 샤일록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 낭만희곡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샤일록의 비극은 작품을 절정에 오르게 만드는 추동력이다.
오씨는 1950년대 학생 시절 데뷔해 반세기 동안 연기자의 길만 걸어왔다. 50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이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로 인해 네 차례나 대수술을 받으며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니 그에게 한 작품, 한 작품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없다.
“건강이 안 좋았잖아요. 제가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어요? 죽기 전에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하나는 아쉽고, 두 작품 정도 남기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두 달 연습하면서 딱 하루 빠지면서 최선을 다해 연습했어요.”
마지막 작품이라는 심정으로 무대에 올랐다는 오현경씨. 그러나 <베니스의 상인>이 정말 그의 마지막 무대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서야 할 무대도, 후배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지식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644-2003.
김일송 <씬플레이빌> 편집장 ilsong@sceneclub.com, 사진 키리스튜디오 한길 실장 제공
김일송 <씬플레이빌> 편집장 ilsong@sceneclub.com, 사진 키리스튜디오 한길 실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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