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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알아본 천재의 조각품

등록 2009-12-23 21:18

죽어서야 알아본 천재의 조각품
죽어서야 알아본 천재의 조각품
국립현대미술관 ‘권진규’전
일본에 있던 작품도 건너와
삼십몇년 전 어느 날, 서울 동선동에 있는 한 가난한 조각가의 작업실에 도둑이 들었다. 작품 하나를 훔쳐간 것을 알게 된 조각가는 그 도둑 안목 좀 있나 보다 싶어 오히려 즐거워했다. 그러나 다음날 나가보니 집 근처에 작품이 버려져 있었고, 조각가는 혼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평단도, 도둑도 몰라줬지만 묵묵히 작품만 만들었던 조각가에게 얼마 뒤 큰 재난이 찾아왔다. 수전증이었다. 조각가에겐 치명적인 병에 시달리던 그는 1973년 5월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가 활동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 겨우 14년 만이었다.

그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세상을 떠난 뒤 조명받기 시작했다. 1주기를 맞아 열린 전시회가 기폭제가 됐고, 자살로 생을 마친 그의 운명도 이야기를 보탰다. 그러나 그를 한국 최고의 조각가로 끌어올린 가장 큰 요인은 보는 사람을 절로 빨아들이는 작품 특유의 힘이었다. 추상이 대세였던 당시 한국 조각의 흐름 속에서 구상 조각에 매진한 권진규는 변방의 비주류였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인물 조각에 오묘하고 깊은 분위기를 불어넣은 권진규의 작품 세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대표작 <지원의 얼굴>이 미술 교과서에 실렸고 그는 단숨에 한국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작가로 올라섰다.

이 비운의 천재가 살아 있었다면 가장 기뻐했을 일은 아마도 2007년 일본에서 전해진 놀라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권진규의 모교이자 화가 이중섭과 이쾌대가 유학했던 무사시노 미술대학 조각과가 개교 80돌인 2009년을 앞두고 최고의 출신 작가로 그를 선정해 대대적인 회고전을 마련한 것이다. 일본의 명문 미술대학이 일본인 아닌 한국의 조각가를 골랐다는 것 자체가 일대 문화적 사건이었다. 2년여간 준비한 이 전시회는 올 10월 무사시노 미대와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합동으로 열렸다. 도쿄근대미술관이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 작가의 전시회를 연 것도 최초였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이 참여해 처음부터 한·일 양국 전시로 기획된 권진규전이 이제 한국으로 건너왔다. 미술관 차원에서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제대로 조명하는 전시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평생의 주제였던 인물, 특히 종교적 느낌을 물씬 풍기는 여인상들과 말머리 조각이 총망라됐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일본 소장품들이 여럿 한국에 선보인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인간에 대한 진지함을 절로 느끼게 하는 인물상들, 특히 작가 자신을 빚은 자소상과 불상을 연상케 하는 여인 입상 등을 눈여겨보라”고 권했다. 내년 2월28일까지 덕수궁미술관. 덕수궁 입장료 포함 6000원. (02)2188-6000.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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