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과 의붓어머니 ‘금지된 사랑’
국립극단 ‘둥둥 낙랑 둥’
최인훈 원작 역동적 연출
최인훈 원작 역동적 연출
올해 연극계는 최인훈 작가의 희곡 세계에 빠졌다. 지난 4월 극단 창파의 <한스와 그레텔>로 시작해 7월 명동예술극장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11월 동랑레퍼토리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 이어 국립극단이 22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둥둥 낙랑 둥>을 올렸다.
최인훈 작가는 전통 설화의 창조적 재해석에 뛰어나다. 설화의 줄거리를 끌어오되 단순 구현에 머물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해체, 변주해서 동시대적 설화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둥둥 낙랑 둥>은 최인훈 희곡의 특징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비극적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삼국사기-고구려본기>의 ‘자명고’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작품은 공주의 죽음 이후로 뼈대를 짰다. 호동의 의붓어머니와 낙랑 공주가 쏙 빼닮은 일란성 쌍둥이라고 설정한 뒤 두 사람의 금지된 사랑과 파멸로 이어지는 극적 과정을 서사적으로 그려냈다.
<둥둥 낙랑 둥>은 작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듯했다. 최치림 연출가는 줄거리와 틀은 유지하되 원작에 없는 주무(이승옥)와 네 무당(남유선, 이은희 등)을 등장시켜 호동과 낙랑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해원하는 굿판으로 새롭게 옷을 입혔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 갈등하는 두 주인공 역을 맡은 극단 배우 이상직(호동)과 계미경(낙랑), 곽명화(낙랑), 객원배우 이지수(호동)의 연기는 탄탄하다. 왕비와 낙랑 뿐 아니라 주몽으로 현신하는 어미무당까지 1인3역을 소화해낸 두 여배우의 연기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럼에도 작품 전체를 감싼 비극적 분위기와 무거움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연출가는 원작에 없는 전투신을 넣어 극의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숨통을 트려 했던 듯하다. 극 마지막의 영혼결혼식이 끝난 뒤엔 실제 무대에 비를 떨어뜨리는 환상적인 연출도 시도했다. 하지만무대 기법보다 극 진행의 강약 조절에 힘을 기울였으면 어떠했을까? 단순한 의사전달 이상을 추구하려는 최인훈 특유의 아름답고 시적인 대사를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22~27일, 새해 1월6~14일 공연. (02)2280-4115~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극장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