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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인종차별에 눈 부릅뜬 ‘음악 연대’

등록 2009-12-29 18:56

아티스츠 유나이티드 어게인스트 아파르트헤이트의 <선 시티>(1985)
아티스츠 유나이티드 어게인스트 아파르트헤이트의 <선 시티>(1985)
[세상을 바꾼 노래 107]
아티스츠 유나이티드 어게인스트 아파르트헤이트의 <선 시티>(1985)
20세기 후반 아프리카 대륙에 세워진 ‘태양의 도시’는, 톰마소 캄파넬라(1568~1639)의 이상향과는 무관한, 백인 부유층 별천지였다. ‘선 시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 인근 가난한 흑인들의 땅에 들어선 호텔, 카지노, 골프장을 갖춘 리조트였던 것이다. 세파와 동떨어져 보이던 이 인공낙원이, 중앙집권적 신정국가를 주창한 캄파넬라의 저술처럼, 시대의 정치적 쟁점으로 대두한 사실은 공교로운 아이러니였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한 유엔 제재를 배경으로, 선 시티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립 가능성을 다투는 1980년대의 전위에 직면했던 것이다.

리틀 스티븐이란 애칭으로 유명한 뮤지션 스티브 밴 잰트는,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에 대응하여 문화적 보이콧을 권고한 유엔 결의가 선 시티의 막대한 자본력 앞에 무력해지는 상황을 수긍할 수 없었다. 당대 슈퍼스타들- 퀸, 로드 스튜어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물론, 심지어 흑인 레이 찰스조차 선 시티의 부름에 응하여 콘서트를 벌였던 현실을 밴 잰트는 부조리한 정치놀음이라고 판단했다. 앞에서는 인종차별 정책을 비난하면서 뒤로는 시장논리 명목으로 유엔 제재안에 반대표를 던진 상임이사국들(미국, 영국, 프랑스)의 행태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예술가 연대’(아티스츠 유나이티드 어게인스트 아파르트헤이트)를 싹틔우고 ‘선 시티’를 열매 맺게 한 뿌리는 그런 문제의식의 토양에서 자라났다. 밴 잰트가 만들고 ‘… 예술가 연대’의 여러 뮤지션이 노래한 ‘선 시티’는 밴드 에이드 성공 이후 유행처럼 번진 당대의 올스타 자선음반과 대규모 자선공연들에 비춰, 비평가 윌리엄 룰먼의 말마따나, “기금 마련을 위한 노력이라는 닮은” 점보다는 “정치적 선언을 의도했다는 측면에서 다른” 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메시지 또한 명료했다. 요컨대 “나는 선 시티에서 공연하지 않겠다”는 후렴구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선 시티’는 음악적으로도 여타 자선음반들과 차별화한 가치를 지향했다. 스타 라인업의 화려함은 닮았으되, 다양한 장르와 새 영역을 포용한 실험성은 달랐다. 재즈 거장에서 힙합의 신성까지, 레게 뮤지션에서 펑크 로커까지를 망라하여 전례 없는 ‘그루브’(한 음악이 자아내는 특유의 고양된 리듬과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비평가 데이브 마시는 이 노래의 “정치적 즉시성은 희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 돋보이는 라인업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절충적 성취가 아니라 예술적 연대의 두드러진 약진”이었고 “최소한 팝 음악 내부에 존속해온 나름의 아파르트헤이트에나마” 변화를 가져온 진보였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대양주, 북구 출신들까지 한데 어우러진 ‘선 시티’의 인적 구성은 그 증거다.

‘선 시티’는 남아공은 물론이고 레이건 정권의 보수적 미국 사회에서 방송금지 조처와 맞서야 했다. 돌이켜보건대, 그것이야말로 이 노래가 획득한 최상의 찬사였다. ‘선 시티’에 참여했던 49명 뮤지션의 면면을 통해, 역사의 반동에 임하는 이 나라의 대중음악 스타들을 다시 생각하며 2009년 말미를 갈무리한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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