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신년음악회
[리뷰] 서울시향 신년음악회
놀랍고 경이적인 사건이다. 지난 6일 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 막바지에 정명훈씨가 스스럼없이 밝혔지만 그가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취임한 후 서울시향은 단 5년 만에 아시아 정상의 관현악단으로 탈바꿈했다.
융단 같은 현의 단단한 기초 위에 이제껏 한국 교향악단의 숙제였던 금관과 목관의 섬세하고 힘있는 조화가 느껴진다. 분명히 이전과 확실히 구별된다. 관현악 음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타악기 또한 더 이상 과장되거나 정도에 지나친 폭발이 보이지 않고 세련된 리듬을 들려주었다. 선입관 없이 듣는다면 기존의 명문 교향악단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5년 뒤엔 세계적으로도 정상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순수하게 악단의 연주기량 향상과 발전에 초점을 둔다면 서울시향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속성장의 사례가 될 것이다.
6일 연주의 화점은 드뷔시의 <바다>였다. 관현악 기법들의 집합체인 이 난해한 작품을 정명훈과 시향 단원들은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 섬세한 순간순간이 얼마나 지독한 연습과 연구로 만들어졌을까. 경이감마저 들었다. 어린 시절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었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파리 관현악단의 연주가 다시 재생된 듯했다. 음악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를 투영한다. 음악은 시간 속에 흐르고 시간은 그림처럼 각인된다. 이날 연주는 시간을 엮는 단단한 실타래를 보여주었다. 라벨의 <라 발스> 연주 또한 정명훈씨의 역량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그의 능력은 색채적이고 화려한 곡일수록 만개한다.
음악회의 막을 연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신현수(23)라는 걸출한 연주가의 등장으로 더욱 두드러졌다. 기량 면에서는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만큼 압도적 연주력을 과시하는 그의 음악세계는 확고하고 독특한 설득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라는 면에서 그의 연주는 완전히 와 닿지는 못했다. 환상적인 기교와 감정의 범람 속에 오케스트라는 자신의 입지를 좁히고 있었고, 마지막 악장에서 보여준 극한의 감정적 대립은 음악의 흐름마저 원활하게 하지 못했다.
음악에 대한 자신감과 겸손, 자신의 주장과 대화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봐야 할 시기가 이 젊은 천재에게 닥친 것 같다. 시간은 음악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류재준/작곡가, 사진 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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