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멤버들. 왼쪽부터 9(송재경·보컬·기타), 1(김석·베이스), 8(이우진·키보드), 7(엄상민·드럼), 0(유정목·기타).
‘9와 숫자들’ 1집음반 발표
‘그림자 궁전’ 출신 송재경씨
기타·신스로 흥겨움 퍼올려
“꽉찬 듯 빈 듯 9가 내 음악”
‘그림자 궁전’ 출신 송재경씨
기타·신스로 흥겨움 퍼올려
“꽉찬 듯 빈 듯 9가 내 음악”
‘9와 숫자들’이란 밴드 이름에서 떠올린 건, 엉뚱하게도 화투판의 ‘섰다’였다. 끗수로만 치면 가장 강력한 패인 아홉끗. 요컨대 9는 숫자의 제왕인 것이다. 이런 속뜻을 겨냥했다면, 9는 상당한 자부심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확인해보고 싶었다.
밴드의 리더 송재경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가 스스로를 9로 부르기 시작한 건 2004년 무렵. 같은 대학 안 음악 하는 이들의 느슨한 모임 ‘붕가붕가 중창단’과 어울리던 즈음이다. 뜻 맞는 몇몇과 ‘관악청년포크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만들었다. 훗날 장기하로 유명해진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의 첫번째 가내 수공업 음반이다. 당시 참여자 중 다른 이들이 지금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 덕원과 1인 프로젝트 밴드 ‘생각의 여름’이다.
9는 주무대를 서울 신림동에서 홍대 앞으로 옮기고는 아예 인디 레이블 튠테이블 무브먼트를 차렸다. 데미안, 로로스, 흐른 등을 잇따라 데뷔시켰다. 반응이 썩 괜찮았다. 2007년 드디어 자신의 밴드 ‘그림자 궁전’ 데뷔 앨범을 냈다. 복고와 사이키델릭의 오묘하고 세련된 융합에 평단은 흥분했다. 9는 미소 지었다. ‘봤지? 내가 이 정도야.’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마치 끗수로만 따지는 섰다판의 아홉끗처럼.
음악에 무심하던 소년의 삶을 바꾼 것은 퀸이었다. 중1 때,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아이 원트 투 브레이크 프리’를 듣고는 전율이 일었다. 이글스, 비틀스 등 팝의 고전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중2 때, 이번엔 크라잉넛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기타를 부수며 공연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혼자서 무작정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드럭을 찾아갔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직접 할 수도 있구나.’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기타를 뚱땅거렸다. 두달 뒤, 어설프게나마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중2 때였다.
서른을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 9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밴드 ‘9와 숫자들’ 1집을 발표했다. 멤버 0·1·7·8과 함께다. ‘그림자 궁전’ 음악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복고라는 뼈대는 그대로인데,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사이키델릭 대신 귀에 착착 감기는 팝의 방법론을 택했다. 기타팝과 신스팝을 두 축으로 서정성과 흥겨움의 살집을 붙였다.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가요’의 향연이다.
“지금껏 참 치열하게 음악을 해왔어요. 늘 도전과 실험에 골몰했죠.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피곤한 거예요. 이렇게 도 닦듯 해야만 하나? 쉬엄쉬엄 즐기며 할 순 없을까? 개인적이고 소소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자. 그렇게 만든 게 이번 앨범이에요.”
9의 의미를 물었다.
“9라는 숫자가 참 묘해요. 풍성하지만 어딘지 결핍된 느낌. 9가 제아무리 높아도 나머지 1이 없으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숫자잖아요. 그게 바로 저고, 제 음악인 것 같아요.”
그는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버지가 술 취해 들어오시면 이불에서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곤 했어요. 예전에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했다면, 이젠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아버지의 웃음을 위해 춤추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진 거죠.” 그는 9보다 1을 더 소중히 여기는 9가 된 것 같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파고뮤직 제공
그는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버지가 술 취해 들어오시면 이불에서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곤 했어요. 예전에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했다면, 이젠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아버지의 웃음을 위해 춤추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진 거죠.” 그는 9보다 1을 더 소중히 여기는 9가 된 것 같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파고뮤직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