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차이무의 배우들이 연극 ‘B언소’ 연습중에 거울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계옥 <씨네21> 기자 klara@hani.co.kr
6년만에 돌아온 풍자 배설극 ‘B언소’
27개 에피소드 통해 지저분한 사회 꼬집기
연출 이상우 “지난해부터 쓸 얘기 많아져”
27개 에피소드 통해 지저분한 사회 꼬집기
연출 이상우 “지난해부터 쓸 얘기 많아져”
‘이상한 나라’의 어느 번잡한 도시의 공중변소. 몹시 뒤가 마려운 ‘남자1’(강신일)과 ‘남자2’(이대연)가 몸을 비비 꼬며 변소 문을 노려보고 있다. ‘남자1’이 1호실과 2호실 문을 한꺼번에 가로막고 서자 ‘남자2’가 벌컥 화를 낸다. “한줄로 똑바로 서! 혼자 다 차지하지 말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쓰는 게 질서 아뇨?”(‘남자1’) “오른쪽이야? 왼쪽이야? 어디야?”(‘남자2’) “중도다!”(‘남자1’) “양다리 걸쳐 놓고 혼자 다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지!”(‘남자2’) 공중변소에서 우거지상을 한 두 배우가 엉덩이 감싸쥐고 ‘오른쪽’과 ‘왼쪽’, ‘중도’ 논쟁(?)을 벌이자 지켜보던 다른 배우들이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린다. 그 자신도 웃음을 참지 못한 이상우(59·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연출가도 “쉿” 하고 입에 손가락을 대며 짐짓 인상을 쓴다. 지난달 31일 저녁 연극 (蜚言所)의 연습이 한창인 극단 차이무의 서울 대학로 연습실 풍경이다. 벽 곳곳엔 에이즈 예방 포스터, 국정원의 간첩 및 좌익사범 신고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바닥엔 쓰레기가 널려 연극 제목 그대로 ‘비언소’, 곧 ‘변소’ 같다. “비언소는 온갖 유언비어의 비언(蜚言)이 난무하는 장소죠. 따라서 연극은 어처구니없는 세상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겁니다.”
오는 5일부터 석달간 대학로의 아트원 시어터 3관 차이무 극장에서 만 6년 만에 작품을 올리는 이상우 연출가는 “는 현실을 더 현실적으로 보는 이상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공중 화장실을 찾는 ‘비언소 여왕’, ‘재수 없는 남자’, ‘각하’, ‘연극계 원로’, ‘걱정 남자’ 등 다양한 군상들이 벌이는 27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더럽고 지저분한 사회를 경쾌하게 꼬집는 작품이 다.
“세상이 두렵고 걱정이 많아서 아늑한 비언소를 못 떠나는” 걱정 남자가 “빨래를 안 빨았다”고 항변하다 결국 ‘좌빨’로 몰려 쫓겨나고, “촛불 배후는 사탄 음모”, “미국 소고기 반대 투쟁은 북한 정권 선전 선동”, “문화예술은 혁명수단” 등 온갖 비언과 설이 난무한다. 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대통령 흉내 내는 코미디언이 많았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는 왜 없나?” “흉내 내봐야 돈이 안 되서 그러는 건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이 쏟아지고 “국토 되살리기는 4대강이 아니라 5대강”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온다. 그 내용들이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쫓겨난 황지우 전 총장이나 최근 법원에서 ‘해임효력 정지’ 결정을 받아낸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빌미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한 김재동씨를 떠올리게 한다. 1996년 8월 초연 당시 고 박광정 연출에, 송강호, 정은표, 박원상, 이대연, 오지혜, 최덕문씨 등이 출연해 객석 점유율 125%를 기록했던 화제작. 2003년 11월 3차 공연까지 ‘비언소’라는 제목으로 선보였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부 내용을 새로 각색하고 알파벳 문자가 들어간 제목으로 바꿨다. 특히 극단 차이무가 아트원 시어터 3관을 전용극장인 아트원 차이무 극장으로 개관하면서 기념공연으로 올리는 ‘생연극 2010’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무대에는 문성근, 강신일, 김승욱, 이대연, 민복기, 이성민, 박원상, 최덕문, 오용씨 등 베테랑 배우들과 노수산나(24), 29살 동갑내기 김지현, 오유진, 공상아씨 등 젊은 객원배우들이 참가해 1인 3~15역을 맡는다. ‘욕심 없는 남자’와 ‘비언소 특실, 각하’ 역을 맡은 문성근(57)씨는 “관객들이 재미있게 웃다가 극장을 나갈 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며 “전용극장이 마련되어 그동안 누적된 인적 자원과 작품들로 관객들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배우 강신일(50)씨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가볍게 웃으면서도 현시대를 고민하면서 연극을 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극단 차이무의 ‘생연극 2010’은 5~7월 <양덕원이야기>(박원상 연출), 8~10월 <돼지사냥>(이성민 연출), 11월~2011년 1월 <늘근도둑이야기>(민복기 연출)로 이어진다. (02)747-101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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