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 전환 돋보인 건축 걸작
세계 최고 수준 미술품 소장
작가 의도대로 설치가 원칙
세계 최고 수준 미술품 소장
작가 의도대로 설치가 원칙
스위스 디자인·건축 탐방 (상) 신개념 미술공간 ‘샤울라거’
기묘하기까지 했던 겉모습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건물 천장까지 확 트인 로비에서 본 이 거대한 현대미술의 성채는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오로지 하얀색 벽과 시멘트로만 이뤄진 내부공간은 예상을 뛰어넘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스위스 바젤 외곽에 성처럼 버티고 있는 신개념 미술공간 ‘샤울라거’는 그 겉모습만 봐서는 무슨 건물인지 예상하기조차 어렵다. 묘한 다각형 건물은 가운데가 움푹 파여 하얀 칠로 덮여 있고, 그 앞에는 기념비처럼 생긴 구조물이 버티고 있다. ‘SCHAULAGER’란 간결한 문패가 붙어 있을 뿐, 건물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정면에서는 건물 입구도 보이지 않는다. 흙과 자갈로 건물 전체를 덮은 옆벽 중간에 낸 작은 철문이 평소 입구다.
■ 작품 무덤에서 신개념 전시장으로 세계 미술계와 건축계에 화제가 된 ‘샤울라거’는 전시장과 수장고가 하나가 된 건물이다. 독일어 ‘샤우’(관람)와 ‘라거’(보관)를 합쳐 새로 지은 이름 그대로 미술품을 보관하는 동시에 전시도 하는 ‘보는 창고’란 뜻이다.
스위스의 유명 미술품 수집가인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은 2001년 새로운 방식의 건물을 구상한다. 재벌가 오너가 대를 이어 모은 현대미술품을 보관하기가 어려워져서였다. 구입품 거의 대부분은 전시회 때가 아니면 창고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규모가 큰 설치 작품은 더욱 보관이 어려웠다. 전세계 모든 미술기관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전시와 보관 기능을 합친 샤울라거다. 재단은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헤어초크와 드 뫼론에게 건물 설계를 의뢰했다. 건축가는 재단과 오랫동안 논의하면서 건물의 개념을 잡아나갔다. 기능에 맞춰 디자인을 뽑아내면서 2003년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모양의 건물이 등장했다.
■ 최첨단 기법으로 보존과 전시를 동시에 샤울라거는 민간 미술기관이다 보니 1년에 한두 번 전시회를 열 뿐 핵심인 보관 구역은 좀처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한국 언론엔 처음으로 <한겨레>에 보관 시설을 공개했다. 층고가 유독 높은 이 건물은 아래 2개 층만 전시 공간으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작가별, 시대별로 구별된 보관방으로 이뤄져 있다. 방들은 평소 보관 창고지만 조정만 하면 바로 전시가 가능한 형태로 유지된다. 바젤 대학과 공동 연구 작업을 위한 시설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소장 미술품 800여점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홍보담당인 슈테판 그라우스는 기자에게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들인 현대미술가 매슈 바니와 사진가 제프 월의 작품 방을 열어 보여줬다. 언제나 그 시점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골라 구입하고,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설치·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라우스는 설명했다. 샤울라거는 건물 핵심 부분에 보관 구역을 배치한 것은 물론 작품 운송과 포장 등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보통 미술관 뒤쪽에 두는 배송장을 건물 가운데에 설치해 작품을 바로 보관시설로 옮기기 좋게 했고, 작품 제작과 포장, 배송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꾸몄다. 작품 운반 엘리베이터는 높이 5m에 적재 중량이 11t짜리였다. 건물 내부를 로비 쪽으로 하나로 틔워놓은 것은 층별로 나눠 온도와 습도가 관람객들이 내뿜는 열기와 습도에 쉽게 영향받지 않도록 하려고 나온 결정이었다고 한다. 내부 온도는 천장 속 온수 파이프로 조절하는데, 외부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온도를 높이고 낮춰 내부를 늘 20도 정도로 맞춘다. 개념부터 다르게 출발해 독특한 디자인으로 등장한 이 ‘보는 창고’는 현대 건축가들의 경연장인 바젤에서도 유독 도드라지는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자리잡았다. 발상의 전환, 건축주의 과감한 결단,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삼박자를 이룰 때 진정한 문화적 사건이 탄생한다는 것을 샤울라거는 보여준다. 바젤/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샤울라거 제공
소장 미술품 800여점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홍보담당인 슈테판 그라우스는 기자에게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들인 현대미술가 매슈 바니와 사진가 제프 월의 작품 방을 열어 보여줬다. 언제나 그 시점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골라 구입하고,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설치·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라우스는 설명했다. 샤울라거는 건물 핵심 부분에 보관 구역을 배치한 것은 물론 작품 운송과 포장 등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보통 미술관 뒤쪽에 두는 배송장을 건물 가운데에 설치해 작품을 바로 보관시설로 옮기기 좋게 했고, 작품 제작과 포장, 배송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꾸몄다. 작품 운반 엘리베이터는 높이 5m에 적재 중량이 11t짜리였다. 건물 내부를 로비 쪽으로 하나로 틔워놓은 것은 층별로 나눠 온도와 습도가 관람객들이 내뿜는 열기와 습도에 쉽게 영향받지 않도록 하려고 나온 결정이었다고 한다. 내부 온도는 천장 속 온수 파이프로 조절하는데, 외부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온도를 높이고 낮춰 내부를 늘 20도 정도로 맞춘다. 개념부터 다르게 출발해 독특한 디자인으로 등장한 이 ‘보는 창고’는 현대 건축가들의 경연장인 바젤에서도 유독 도드라지는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자리잡았다. 발상의 전환, 건축주의 과감한 결단,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삼박자를 이룰 때 진정한 문화적 사건이 탄생한다는 것을 샤울라거는 보여준다. 바젤/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샤울라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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