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연극 ‘에이미’
[리뷰] 한국 초연극 ‘에이미’
굳게 잠긴 두 마음의 빗장을 헐겁게 만든 건 세월의 힘일까? 아니면 외동딸을,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동병상련일까?
“(그때) 내 딸이 이미 내 품을 떠났다는 걸 느꼈네. 자넬 보고 단번에 알았지. 그 당시 내게 남겨져 있던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는 걸. 본능적인 거부라고 생각하지 않나?”(에스메)
“아니요. 어머님은 그저 저라는 사람이 맘에 안 드셨던 겁니다.”(도미닉)
두 사람은 함께 웃는다, 처음으로 둘 사이에 어떤 진짜 따스함이 오갔다.
원작 제목 그대로 ‘에이미의 생각’의 힘이었다.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줘야 한다. 그럼 언젠가 되돌려받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갈등을 녹였다.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63)의 연극 <에이미>가 지난 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국내 첫선을 보였다. 이 극장과 극단 컬티즌이 공동 제작하고 최용훈(47·극단 작은신화 대표)씨가 연출한 이 작품은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에 따른 영국 사회의 변화를 한 가족의 갈등과 극적인 화해의 드라마로 풀어냈다. 신식 미디어를 혐오하는 늙은 배우 에스메와 텔레비전, 영화의 힘을 맹신하는 영화감독 사위 도미닉과의 갈등이 큰 줄거리. 그런 갈등을 에이미의 시선이 좇아간다.
공연에서는 노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에스메 역의 윤소정(66)씨는 배우로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완벽주의 여배우이자 엄마를 능숙하게 연기했다. 정확한 대사와 오랜 무대 경험이 녹아든 표정 연기와 몸짓 등으로 젊은 배우들을 이끌었다. 또 극 속의 웃음 요소를 잘 살려내 메마르기 쉬운 극 분위기를 적절하게 눅였다. 에스메의 재산 관리인 프랭크 역을 맡은 이호재(70)씨는 에스메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꽁지 머리 신사로 깜작 변신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백수련(74)씨도 치매에 걸린 에이미의 할머니 이블린 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한편, 도미닉 역의 김영민(39)씨는 반항기 넘치는 청년부터 야심 있는 성공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능숙하게 연기했고, 에이미 역의 서은경(34)씨도 23살 숙녀가 삶에 지친 30대 주부로 변모하는 모습을 무리 없이 보여주었다. 다만 극 종반 어머니와의 갈등 장면에서 대사와 감정의 완급 조절이 아쉬웠다. 21일까지. (02)3673-5580.
정상영 기자, 사진 극단 컬티즌 제공
정상영 기자, 사진 극단 컬티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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