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인 1985년 6월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MBC-FM 청소년음악회 무대에 패기만만한 20대 젊은 국악연주가 5명이 섰다. 이날 가야금과 피리, 소금, 대금 등 전통 악기와 기타, 신시사이저 등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이들의 ‘신국악’ 연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두달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쏟으면서 구전민요 ‘꽃분네야’와 ‘쑥대머리’, ‘어디로 갈거나’ 등의 국악가요를 애절한 목소리로 들려준 강호중(50·추계예술대 국악과 교수)씨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자 전국에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바로 80년대 사물놀이의 탄생과 더불어 국악 대중화의 한 획을 그었던 창작국악연주그룹 ‘슬기둥’의 첫 데뷔 무대였다.
85년 5월 KBS국악관현악단의 연주자 강호중(피리, 기타), 이준호(소금·대금, 작곡), 조광재(신시사이저, 작곡), 민의식(가야금), 문정일(피리), 노부영(가야금, 양금), 정수년(해금), 오경희(아쟁)씨 등 20대 젊은 국악연주가 8명이 ‘신국악운동’을 부르짖으며 결성한 슬기둥의 등장은 처음부터 국악계에 화제를 모았다. 거문고를 뜯을 때의 활달한 손놀림을 뜻하는 국악 용어인 ‘슬기둥’을 그룹 이름으로 내걸고, 전통 국악기 편성에 신시사이저와 기타를 도입하는 파격적인 이들의 행보는 한때 ‘국악계의 이단자’로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탄탄한 연주실력과 창작성을 바탕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이 조화된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는 곧 국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창단 멤버로 현재까지 슬기둥을 이끌고 있는 이준호(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대표는 “한국적이면서 대중적이고 진부하지 않은 음악을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며 “초창기에 ‘국악계의 이단자’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1~2년 지나면서 우리의 뜻을 이해해주더라”고 그때를 떠올렸다.
창단 첫해 10월에 합주곡과 독주곡을 담은 1집 음반 <창작무용음악>에 이어 두해 뒤인 88년 1월 내놓은 2집 음반 <김영동·슬기둥 노래집>은 슬기둥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음반에 수록된 ‘누나의 얼굴’, ‘꽃분네야’, ‘애사당’ 등 국악가요와 ‘상주모심기’, ‘쑥대머리’ 등 민요와 판소리가 잇따라 방송을 타면서 슬기둥은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송혜진 숙명여대 교수는 “슬기둥은 전통음악과 신(新)음악,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개성 있는 음악세계를 가꾸어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악 대중화의 길을 튼 초창기 멤버들이 대학의 교수나 지휘자로 나서면서 연주활동이 힘들어지자 슬기둥은 원일, 김용우, 허윤정 등 젊은 멤버들로 3차례 세대교체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음악을 실험했다. 재즈, 가요, 록 음악 등 여러 장르와 다양한 융합을 시도하고 대형 라이브 공연무대를 선보였다. 기악곡으로 이루어진 3장의 앨범과 성악곡으로 이루어진 3장의 앨범을 포함한 8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총 400여회의 공연을 꾸몄다. 그들의 대표곡인 ‘산도깨비’, ‘소금장수’ 등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창단 25년을 맞은 퓨전국악 원조 그룹 슬기둥 단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2004년부터 4기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대금·소금 연주자 한충은(36·KBS국악관현악단)씨는 “국악고 시절 슬기둥의 음악을 처음 듣고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슬기둥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슬기둥이 올해 창단 25돌을 맞아 18~19일 저녁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기념 콘서트 ‘비상’(飛上)을 연다.
이준호 대표를 비롯한 단원들이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통음악과 가요, 재즈, 록이 스며든 슬기둥의 대표곡을 들려준다. ‘고구려의 혼’ ‘신뱃놀이’ ‘신푸리’ 등 연주곡과 ‘흥타령’ ‘어?! 사또’ ‘사설난봉가’ ‘꽃분네야’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 ‘아리랑 연곡’ ‘창부타령’ 등으로 꾸몄다.
25년 세월 동안 한층 숙성된 슬기둥의 깊은 연주와 더불어 1대 강호중씨와 2대 김용우씨, 3~4대 오혜연씨 등 슬기둥을 이끌고 있는 소리꾼들의 맛깔난 노래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씨, 록그룹 ‘백두산’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김도균씨 등이 특별 손님으로 함께 무대에 선다. (02)3471-0074.
글 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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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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